[페미니즘의 도전]

“그러나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기 글이 주는 불안

특히 이곳에 글을 쓸 때마다, 글의 내용과 형식(이런 식의 구분이 가능하다면)이 모순을 일으키며 충돌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글을 통해 비판하는 바로 그러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분명 그런 모순 속에 있을 것이다.

이런 불안들이 글쓰기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루인에게 1990년대는 소설 그리고/혹은 시를 쓰던 시절이었다. 재능은 없었지만 즐거웠고 미친 듯이 좋아했다. 하지만 서서히 힘들었고 지쳐갔고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그때가 99년. 결국 모든 걸 불태우고 끝내버렸다.

왜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꺾어진 골목이었음을 몰랐을까.

이후, 다시는,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 없게 하는 자기 저주를 퍼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두 번 다시는 글을 쓰지 못했고 그렇게 잊혀진 기억이 되었다.

힘들어 질수록 더 많은 글을 생산하고 있다. 불안하고 글쓰기가 힘들어질수록 더 열심히 글을 쓰겠다는 다짐. 관계가 불안할수록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소통의 새로운 장으로 들어가듯 글쓰기의 불안이 심해질수록 더 많은 글을 씀으로서 새로운 길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곳이 사실은 꺾어진 골목임을 깨달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여하튼 간에 계속해서 이곳에 쓰는 글들이 불안하다.

주말은 빈둥거리며

책읽기 일정을 조금 변경했다. 벨 훅스bell hooks의 [열망Yearning]을 이번 달 안에 다 읽는 방향으로 갈까한다. 그전 같으면 매일 조금씩 영어와 노는 기분으로 했겠지만 방학계획을 세우며 방학 때 읽을까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읽기 전에 벨 훅스의 [열망]과 또 다른 한 권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마 한글 책은 덜 읽을 것 같다.

세미나를 하나 하고 있지만 루인이 세미나와 잘 어울리는 인간인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세미나를 하나 꾸릴까 하는 몸앓이와(위의 방학 계획과도 관련) 그냥 혼자 놀까하는 몸앓이, 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한 편으론 세미나가 도움이 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저 그렇기 때문이다. 세미나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외적인 문제 때문에.

여이연 가을강좌 일정이 나왔는데 우려했던 목요일에 한다. 목요일은 이랑과 세미나 하는 날. 며칠 전, 연세대에서 하는 [문화와 성연구 워크샵] 공개특강에 가서 임옥희 선생님을 만났는데, 루인에겐 목요일이란 날짜가 너무 애매하다고 징징거렸더니, 선생님 왈, “여이연 강좌가 더 좋을 건데” 라며 놀리는 것이다ㅠ_ㅠ(당시의 분위기와 뉘앙스를 살리지 못하는 글쓰기라니-_-;;) 하지만 그날 선생님한테서 책을 선물 받아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0^ 이런 강좌에 다니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친구들과의 세미나, 학내 수업에서와는 또 다른 자극적이고 신나는 몸을 만날 수 있어서.

어제 숨책에 가는 외출이 있었지만 주말 이틀을 이렇게 종일 玄牝에서 빈둥거리며 노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위로와 정화의 느낌. 그나저나 내일은, 아하하하, 9월부터 간다고 간다고 벼루고 벼르던 교보에 드디어 간다-_-;; 귀차니즘의 승리랄까. 오전에 일찍 갔다 오려고. 이것도 다 정희진 선생님의 새 책이 나와서 이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