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고양이와 1년

1년 전 오늘, 저는 과감하게 바람의 동생을 들이기로 합니다. 홍대 인근에서 가기 싫다고 울던 보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지요. 아직도 기억해요. 바람은 바람대로 엄청 놀라며 이불에 숨고, 보리는 보리대로 놀라고 무서워서 베개 뒤에 숨었지요. 제가 손을 내밀어 쓰다듬으면 안심했지만요.

며칠 지나 적응하면서 이런 표정을 지었지요.

이런 작은 고양이, 아기 얼굴이 분명한 꼬맹이었죠. 뱅갈이냐는 말도 들으면서요. 🙂
그런 예쁘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이런 표정을 짓는 성묘로 변했습니다. 흐흐흐.
일부러 이런 표정을 골랐지요. 흐흐흐.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이런 포즈를 취했지요. 이 녀석.. 후후.

체형이 코숏과는 달라 뱃살이 붙거나 살이 많이 찌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 뱃살도 좀 붙었습니다. 하지만 뱃살은 바람이죠. 후후. 바람의 뱃살. 그리고 보리는 그 쫄깃한 체형이 매력이지요. 스크래처에서 뒹굴며 놀기도 잘 놀면서요.

물론 이런 표정도 짓습니다. (포스터를 최근 것으로 바꿀까봐요.)
하지만 사실 이 표정은…

이러기 위한 준비 단계였습니다. 후후후.
1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러면서도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정도 많이 들었고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가 뒤돌아봤을 때 보리가 박스 위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어쩐지 서운한 그런 시간입니다. 아니, 보리가 옷장에 들어가는 걸 좋아해서 옷 갈아 있을 때면 옷장에 잠시 들어가게 하는데, 그렇게 보리가 조용하고 보이지 않으면 뻔히 어디있는지 알면서도 허전함을 느낍니다.
저만이 아니라 바람도요. 열심히 싸우지만 또한 엄청 잘 놀고 때론 붙어 있기도 하죠. 바람은 보리의 성격을 배워서 조금은 담력을 키웠고 보리는 바람의 성격을 배워서 낯선 사람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도망가고 숨습니다. 여전히 보리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응가하는 모습을 자랑하지만요. -_-;;; 흐흐흐.
이제까지 함께해서 기뻐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

이해하기 힘든 일

옳고 그름의 문제, 우월과 열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어제 밤에 읽은, 제대로 비평글을 쓰고 싶도록 한 어느 논문(그 논문은 문화연구자 양성의 현주소를 논하고 있다)에서 문화연구가 사회과학을 포함한 분과학문에 인문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며 인문학과 출신은 연구대상이 인문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에 가까워서, 그리고 글쓰기 형식이 달라서 문화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출신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성찰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하여 문화연구 논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그 이후 여성학을 공부했고 석사논문은 영문학전공인 선생님에게서 썼고, 지금은 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있다. 어찌보면 분과학문의 양극을 전공하고 있지만 나는 이들 학문 사이에서 부대끼거나 뭔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겐 이들 모두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공부지 뭔가 낯설고 괴로운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 전공자는 다른 어느 전공을 익히기 어려워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 (나는 그 문단에 커다란 물음표를 그려뒀다.)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공부했고 읽었던 나로선 서로 낯설어하는 태도 자체가 낯설다.
다른 말로 나는 아직도 사회과학적 연구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동시에 사회과학적 연구라는 것과 인문학적 연구라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나의 이런 몸은 치명적 한계일 수 있다. 학문을 제대로 모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쓸 때 왜 형식, 아니 관습부터 규정해두고 시작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일단 원하는 형식으로 쓰는 것이 좋지 않나? 공부가 짧은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잠들기 직전의 상태인데 블로깅하려고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어쨌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mtf/트랜스여성/트랜스젠더/젠더퀴어의 성적 ‘반응’과 관련해서…

정말로 단순하게 짧게.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훨씬 길어야 하고 복잡하니까. 짧게.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남성으로 지정받았고 그래서 끊임없이 남자로 불리고, 남성으로 양육되고 “사내자식이”란 말을 들어야 했지만, 자신을 남성으로 동일시하지 않거나 여성으로 인식하거나, 남성이자 여성이라고,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그냥 트랜스젠더라고, 젠더퀴어라고 또 다른 어떤 젠더라고 인식하는 사람들 중에서 종종 혹은 자주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성적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은 짧다면서 문장은 무척 길다.. -_-;;;] 특히 발기와 사정으로 말해지는 경험 때문에 더더욱 괴로워하고 자신의 몸과 갈등하기도 하죠. 발기와 사정이 언제나 비트랜스-남성의 경험으로만 말해지기에 몸의 이런 반응, 혹은 작용에 거부감이 크기도 하고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이 여성이어서, mtf여서, 트랜스여성이어서, 젠더퀴어여서, 트랜스젠더여서, 혹은 다른 어떤 젠더여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땅한 대체 용어를 아직은 못 찾았지만(애써 용어를 바꾸기보다는 의미를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멋진 용어가 있다면 좋겠지요) 발기와 사정은, 예를 들면, 당신이 여성이어서 경험하는 겁니다. 발기와 사정은 트랜스여성이어서, 트랜스젠더여서, 젠더퀴어여서 혹은 또 다른 어떤 젠더여서 하는 경험이지 ‘남성’이어서, 남자의 몸이라서 겪는 게 아닙니다. 발기와 사정으로 괴로워 하지 말아요.
(물론 연애를 원할 경우, 파트너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가… ;ㅅ; )
아무려나 이 주제와 관련해선 정말 제대로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