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란 말은 애초 불가능했는지도…

어떤 연구 분야에서 이제까지 LGBT와 관련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논문도 게이남성에 집중하고 있고 레즈비언, 바이여성, 트랜스젠더는 빠져 있다고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그 자신의 논문은 제목에 LGBT를 분명하게 명시했다. 그리고 글을 전개하는 내내 LGBT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 논문에서 바이/양성애와 트랜스젠더는 기껏 몇 줄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동성애 논의였다. 동성애 맥락의 논의를 하면서 LGBT라고 쓰고 있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같이 언급하며 성적 지향 이슈라거나 성적 정체성 이슈라고 설명했다. 흠…
LGBT는 LGB/T인지, LG/B/T인지, L/G/B/T인지 심하게 많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각각을 나누는 의도는 다 다르다. 트랜스젠더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하자. 트랜스젠더가 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논의란 점에서 성적지향 이슈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동성애와 양성애 이슈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앞 문단에서 예를 들었듯 트랜스젠더의 다른 생애 경험을 성적 지향의 경험으로 환원하는 어떤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페미니즘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계속해서 배제하거나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를 젠더 이슈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랜스젠더 이슈는 젠더 이슈란 점을 계속해서 주장해야 하는 상황이 한 편에 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가 동성애/양성애와 다른 이슈라고 말하면, LGBT라고 통칭하는 공간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를 그냥 그들의 이슈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박원순의 트랜스젠더 지지, 동성애 반대 발언도 이런 이해가 한 켠에 있었겠지. 아마도. 동시에 이런 구분은 트랜스젠더의 섹슈얼리티 경험, 성적 지향 경험,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이나 젠더 이행에 섹슈얼리티와 성적 지향이 매우 밀접하게 작용하는 점을 무시해버린다. 실제 트랜스젠더의 섹슈얼리티 논의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분은 트랜스젠더를 모두 이성애자로 가정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정말로 트랜스젠더와 성적 지향 이슈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슈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다시, 둘을 구분하는 것이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여장남자나 남장여자란 범주를 다시 사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한다.
동시에 동성애와 비교할 때 트랜스젠더만이 계속해서 이런 딜레마, 어느 쪽으로도 선택할 수 없는 갈등을 겪는다. 이것이 이른바 LGBT라고 이야기하는 (상상적/망상적)공동체에서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는 권력 문제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 정확하게 이 순간에 LGBT로 묶는 것 자체가 엄청난 망상 혹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던 것일까라고 꿍얼거리지만… 이것은 좀 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뭔가 심란하고 갈등하고 곤혹스러운 시간이다. 뭐, 언제는 안 그랬느냐만.

앎을 공유하기…

LGBT를 향한 사회적 차별, 억압, 괴롭힘, 폭력 등에 따른 공동체의 심리를 다룬 미국의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논문은 “게이와 레즈비언 해방 운동(바이섹슈얼/양성애와 트랜스젠더는 나중에 함께 한다)”로 시작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논문이 나를 괴롭히는구나’라며 불평했다. 익명의 심사자가 논문을 심사하는 학술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심사자 중에 이런 식의 역사 인식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편집위원회에 이를 걸러낼 사람이 없었던 걸까? 암튼 순간적으로 이 논문을 그냥 읽지 말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한국의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자의 역사를 살피면 이런 식으로 역사를 서술하기가 어렵다. 물론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지만 남성간 관계, 여성간 관계, 트랜스젠더 등은 1960~1970년대에 각자 혹은 섞인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게이와 바이남성과 mtf/트랜스여성과 ftm/트랜스남성과 크로스드레서가, 레즈비언과 바이여성과 ftm/트랜스남성과 mtf/트랜스여성과 크로스드레서가 뒤섞인 형태로, 혹은 더 복잡하게 뒤섞인 형태로 종로, 명동, 이태원 등지에서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인권운동을 기준으로 할 때도 같이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동성애인권운동을 1990년대 초반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LGBT/퀴어 인권운동을 1990년대 초반에 시작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동성애인권운동으로 역사를 전유하고 있지만… 하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한다.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함께 이를 어떻게 사람들과 공유할 것이란 점 말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선입견처럼 각인된 어떤 지식은 아무리 다른 지식, 해석을 떠들어도 입력되지 않는다. 듣는 그 순간엔 반응이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돌아서서 글을 쓸 땐 ‘무심결에’ 처음의 선입견 같은 지식을 반복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한국 변태의 역사쓰기를 한다면 그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떻게 이를 공유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 아마도 역사를 쓰는 작업보다 이를 공유하는 작업이 더 어렵겠구나,라는 고민을 했다. 저 논문을 읽으면서.

식습관의 변화, 몸의 변화

코피가 나는 게 아니라 코에서 피가 나는 계절이다. 번역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이 없는 시기기도 하다. 그래서 어제 밥을 해야 했는데 잊기도 했고 정신이 없기도 해서 오늘 저녁에야 밥을 했다. 밥을 하다가 몇 년 전이 떠올랐다.
금요일 저녁이면 김밥을 몇 줄 사서 집으로 들어가선 주말 내내 냉장고에 보관한 김밥을 먹으며 살던 시기가 있었다. 오래 전이 아니라 2~3년 전의 일이다. 경우에 따라선 좀 무리를 해서 즉석밥에 비건용 볶음고추장을 비벼서 밥을 먹기도 했다. 하루에 한끼 이상을 집에서 먹었는데 늘 이런 식으로 밥을 먹었다. 어떤 주말엔 채식라면을 끓여 김밥과 먹기도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즉석밥에 볶음고추장을 비벼서 먹는 것에 비하면 라면이 영양이란 측면에서 훨씬 좋겠다고. 언젠가 비건이라면 신선한 야채를 중심으로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지 통조림이나 즉석식품을 중심으로 먹는 정크비건이어선 안 된다는 글을 읽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정말 정크비건이었다. 지금도 정크비건이 좋고. 비건이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비건은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 수준에 맞춰 대충 먹다보니 라면의 영양성분이 밥보다 좋겠다고 생각했다. 속쓰림 문제만 아니라면 정말 라면만 먹으로 생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경제적 여건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식습관이 좀 바뀌었다. 여전히 정크비건이고 정크푸드를 사랑하지만 밥을 직접 해서 먹고 있다. 밥은 대체로 아홉 가지 정도의 곡물을 혼합하기에 밥만 먹어도 건강할 것만 같달까. 반찬 역시 가급적 신선한 야채 중심으로 바뀌었고. 뭐,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바뀐 건 온전히 E느님 덕분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내 몸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면 E를 만난 뒤 실제로 식생활 자체가 바뀌었다. 그리고 실제로 몸이 바뀌었다. 예전엔 수시로 어지럽고 심한 현기증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이런 증상이 거의 없다. 여러 모로 건강이 좋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달까. 물론 예전에 너무 대충 먹어서 비교가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몸이 좋아졌으니 다행이고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