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생일을 축하해

하루 늦어 미안하지만…

그래도 너의 생일을 정말 축하해.
잊고 있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 한 시간이 벌써 5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주 낯설어.
어설프고 많이 부족한 집사와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너의 너그럽고 다정한 성격이 무척 고맙고.
우리가 살아 있는 순간까지는 꼭 함께 하길 바라.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바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질문에 질문: 음란, 범죄, 그리고 퀴어

특정한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닌 그저 공공에서 성적 행위 혹은 이른바 ‘음란’ 행위, ‘풍기문란’ 행위를 하는 것은 위법행위인가? 왜 위법행위인가? 혹은 이것은 어떻게 위법으로 구성되었는가? 이 질문은 욕망은 어떻게 규제되고 있는가, 그리고 욕망의 규제는 어떤 사회를 구성하려는 기획/욕망인가와 이어진다. 동시에 위험한 욕망, 위법한 욕망, 그리고 법의 테두리에 포섭되는 욕망의 경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그리고 바바리맨 말고 공공에서 성적, ‘음란’, 혹은 ‘풍기문란’으로 체포되고 성범죄자로 알려진 여러 존재를 퀴어와 붙여버린다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과거에 어땠다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어떻게 재독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나는 자꾸만 범죄와 엮이는 것일까? 단순히 글쓰기나 관심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의 성장 환경, 내 삶의 어떤 사건들을 말하는 것이다. 범죄는 내게 무엇일까?

맥락이라는 것

SNS 이후 무척 많은 사람이 맥락을 무시하는 말하기, 자신의 의견을 직접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기(단순 리트윗, 좋아요, +1 등)에 익숙해진다는 SNS 이후의 말하기, 글쓰기는 어떻게 바뀔까? 다른 말로 맥락을 무시하고, 혹은 맥락을 설명하는 것을 귀찮아하며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다음에도 여전히 맥락을 꼼꼼하게 말한 다음에 조밀하게 말하는 사람은 이른바 ‘아날로그 vs 디지털’이란 구분에서 ‘아날로그’로 분류될까? 아니면 말하기와 글쓰기는 여전히 어떤 표현의 욕망이기에 여전히 맥락을 짚으며 꼼꼼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여전히 중요할까? 별 의미없는 헛된 질문이지만, SNS가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람들의 일상에 침윤할 때, 말하기 방식과 글쓰기 방식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럴 때 ‘맥락’은 어떻게 사유될지 궁금하다.
이 질문의 또 다른 측면은 만약 권리 개념, 인권 개념, 자유 개념 등이 내가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유통되는 현재 상황(가해를 할 권리, 혐오 발화를 할 자유 등)에서 각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고민을 가끔 한다. 맥락이 무시되는 시대에 정치하게 설명하는 글, 그러니까 맥락화하고 맥락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해는될까? 읽히기는 할까?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맥락이 자꾸만 사라지는 상황, 무시되는 상황에서 ‘맥락’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