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기

종종 퀴어이론서나 퀴어의 삶이나 이론을 다룬 글을 두고, “너무 어렵다 좀 더 쉽게 써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쉽게, 더 쉽게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요구가 한국에서 퀴어이론을 가벼운 정보, 팝콘 같은 지식으로만 소비하려 하고, 퀴어이론이 심화되길 거부하는 어떤 기획(혹은 불안)으로 하는 얘기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결코 퀴어이론이 심화되고 퀴어의 복잡한 삶을 이야기할 수 없도록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의심에 불과하지만, 좀 그렇다.

답답

마감을 넘긴 원고를 쓰고 있다. 참 이상하지. 어떤 잡지에 글을 쓰고 있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참 글이 안 써진다. 꾸역꾸역 써야만 간신히 분량을 채우고 있다. 이런 적이 잘 없는데 왜 이럴까? 머리가 아프다. 그저 내가 갑갑할 뿐이다.
한 5년 정도 잠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래서 유학을 가는 게 더 좋다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난 한국에 있기로 했고 한국에 있으면서 부대끼는 삶을 쓰기로 했지. 하지만 여전히 5년 정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강해지고 있는 바람이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