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에서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퀴어는…

미국 퀴어 역사 혹은 GLBT(책의 표현) 역사를 다룬 책을 한 권 빌렸다. 도서관에 주문했는데 금방 와서 빌릴 수 있었다. 책을 살펴보다 재밌는 부분을 확인했다. 색인(index)에서 트랜스젠더가 있었다. 바이섹슈얼/바이섹슈얼리티도 있었다. 그러나 게이와 레즈비언은 색인에 없었다. LGBT의 역사를 어떻게 사유하는가를 매우 잘 보여주는 익숙한 장면이다.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퀴어는 LGBT건 GLBT건 그 역사에 곁가지고 첨가할 내용이지 기존의 ‘퀴어=동성애’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할 인식론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동성애/자 역사가 있고 거기에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퀴어가 추가될 뿐이다.

언젠가 E는 LGBT가 레즈비언, 게이, 부치, 탑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상당히 동의한다. 혹은 레즈비언, 게이, 바텀, 탑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는 순간이다.

트랜스로 동성/애를 다시 생각하기

지금 트위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이섹슈얼과 무성애, 젠더퀴어를 향한 혐오, 삭제, 부인, 부정 암튼 그런 상황 관련 제보(는 아니지만 나 입장에선 결국 제보기도…)를 받고 있다. 용어가 등장한지 고작 150년 정도고 한국에서 정체성으로 등장한지 이제 20년 좀 넘은 동성애 범주로 그렇게 다른 범주를 부정하고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접하면서 드는 고민은… 트랜스(트랜스젠더퀴어&인터섹스) 맥락에서 동성애 혹은 동성이란 개념이 얼마나 우발적이고 우연적 사건인지, 때때로 그것이 불가능하며 동성을 고집하는 태도가 트랜스를 전혀 사유하지 않는 태도일 수 있음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싶다. 어디선가 짧게 쓴 기억이 있지만 이 지점만 특화해서. 물론 이것 역시 그저 무수히 많은 “쓰고 싶은 글” 목록 어딘가에 위치하겠지만.

암튼 분명한 것은, 어떤 범주가 정체성이다, 차별을 받고 있다 아니다란 논의에 덧붙여 트랜스 맥락에서 동성/애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추가하고 싶다. 그런데 이건 바이섹슈얼 맥락에서도 가능한 질문이다. 인식론적으로, 현실적으로 트랜스와 바이섹슈얼리티/양성애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범주를 후회할 수 있기를

지금 작업 중인 글에서 구절 하나가 찜찜하게 남아 있다. 강의에서라면 그냥 지르는데 글이라서 문제다. 대충 내용은 다음과 같다. LGBT/퀴어가 정체성이라면 한 개인의 개별적 정체화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만이 정체성을 선언할 수 있다는 구절이다. 매우 논쟁적이고 곤란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지르고 싶은 이유가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아니면 끊임없이 정체화가 부정되고 부인되고 의심받는 상황 때문이다. 부정하고 부인하는 주체가 이른바 퀴어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문장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나를 뭐라고 정체화하건 넌 닥쳐!다.
(물론 정체성이 정말로 자기 선언이라면 왜 어떤 정체성은 자기 선언으로 인정받고 다른 어떤 정체성은 자기 선언으로 부정되는가란 질문, 그 권력 작동에 대한 질문이 동반되어야 한다. 즉 정체성은 자기 선언이 아니라 자기 선언을 확정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정체성은 자기선언일 수 없으며 지난한 경합의 과정이다.)
바이섹슈얼은 한시적 착각이다 정치적으로 의미없는 범주다, 무성애나 젠더퀴어는 유행이며 제대로 몰라서 그런 것이다와 같은 말을 하는 것, (이성애와)동성애가 아닌 범주를 조롱하는 것, 기본적으로 동성애 역사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동성애는 끊임없이 의심받는 정체성이었고 무시받고 있고 10대 시절 한때의 행동일 뿐이란 소리를 들었다/듣는다. 반LGBT/퀴어 집단, 보수기독교 집단, 전환치료 주장하는 집단이 하는 소리기도 하다. 지금 그 소리를 다른 범주에게 하고 있다. 뭐하는 짓인가.
무엇보다 좀 더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한 다음 정체성을 체화해야지 청소년기에, 혹은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 하는 시기에 무성애처럼 유행하는 정체성을 취하는 게 문제라는 태도는 정체성의 영구불변성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나를 트랜스젠더퀴어라는 매우 포괄적 용어로 설명하는데 그 이상 자세한 범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변한다. 나는 나의 성적 선호(내게 성적 지향은 있을까)는 처음엔 비이성애, 그 다음엔 레즈비언, 다시 바이섹슈얼, 그리고 지금은 바이섹슈얼, 무성애, BDSM, 이성애, 레즈비언, 폴리아모리 등이라고 고민한다. 나는 사리분별을 못 해서 이렇게 계속 바뀌는가? 최신 유행을 따라 가느라 이러는가?(동성애 정체성이 아니라 용어가 등장한지도 150년 밖에 안 되었으면서 무슨…) 물론 나는 아직도 사리분별을 못 하고 있고 나는 아직도 어려서 제대로 판단을 못 하고 있는 것, 맞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정체성이나 범주가 고정되지 않기를 바라고 후회할 수 있는 것이길 바란다. 한 번 레즈비언이면 일평생 다른 욕망이 생기지 않는 레즈여야 하고 한번 트랜스면 일평생 트랜스에 부합하며 살아야 하고… 나는 이런 사유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을 mtf/트랜스여성이라고 인식해서 호르몬과 수술을 했다가 13년 즈음 지났더니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재성전환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믿는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회가 지금보다는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 물론 안 바뀌면 그대로 가는 거고. 미래의 어떤 시점에 지금과는 다른 정체성 범주를 선택한다는 것이 과거 나를 설명했던 용어와 경험, 역사를 부정하고 부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살면서 내 삶과 몸의 경험을 설명하는 다른 방식을 찾은 것 뿐이다. 그리고 후회하면 어떤가? 후회한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는데. 다른 많은 일을 후회하며 살듯 정체성도 후회할 수 있는 일이 되길 바란다. 왜 정체성만, 범주에 불과한 정체성만 그렇게 확고하고 특정 규범에 짜맞춘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왜 동성애만은 확고하고 반박할 수 없는 정체성인 것처럼 인식하는데. 나는 그딴 게 싫어서 트랜스젠더퀴어란 용어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정체성을 함부로 논평하고 부정하고 부인하고 삭제하는 행위, 어떤 행위를 특정 방식으로만(특히 동성애 중심의 언어 체계로만) 설명하려는 태도는 그 자신을 신의 위치, 재판관의 위치에 두는 행동이다. 나는 당신을 나의 신으로, 재판관으로 선임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사리분별을 못 한다고 해서 당신이 나 대신 판단할 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 권력이 있다는 당신의 믿음이 내가 가장 저항하는 바로 그 권력이다.
혹여나 이런 태도가 반LGBT/퀴어, 보수 기독교 집단에 유리하다고? 혹은 이성애사회가 의심한다고? 왜 그들의 성미에 맞춰야 하는가. 그들의 성미에 맞추는 사회는 나를 죽이는 사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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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잘못 정체화하고 있다. 아마 영원히 잘못된 범주로 정체화할 것이다. 그리하여 매번 다른 범주로 나를 설명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