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야: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편지

당신을 만나고 싶다. 기다린다.

베를렌이 랭보에게 보낸 편지는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고 한다. 랭보는 자신의 시를 베를렌에게 보냈고 랭보의 시를 읽고 반한 베를렌은 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단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편지를 통해 둘은, 당시엔 ‘파국’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랑에 빠진다.

처음 이 두 문장을 읽었을 때 몸이 아팠고 그 정황을 알았을 때 더 아팠다. 결코 보내지 않은 편지. 보내지 못한 편지이기도 하지만 보내지 않은 것이기도 한 편지. 보내지 않았기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을 만나고 싶다.
기다린다.

몸상하다

겨울이 오고 있다. 시원하다.

몸이 삐걱거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10톤짜리 망치로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얼얼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질 못했다. 학교는 맨날 9시에 간신히 도착하며 지각하기도 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9시 전에는 학교 사무실/연구실에 도착했으면 하는 몸의 통금시간이 있다.

지금도 입안이 헐은 것처럼 쓰려서 음식을 잘 못 먹는 상태다. 입 안 구석구석이 아픈데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 그냥 어정쩡한 상태. 그래서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지만 몸 어딘가 상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잘 먹어야지.

그러고 보면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한 세월을 견디고 있다. 환절기, 계절이 변하는 시간이라 몸이 적응하는 중이라 이럴지도 모른다. 날씨, 계절 등에 몸이 민감한 편이라, 작은 변화에도 몸이 반응한다. 꽤나 오래 전에 읽은 신문기사에,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세계적인 석학이 못 나오는 반면 영국은 일 년 내내 날씨가 비슷하기에 석학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한편으론 얼토당토 안 한 소리지만 다른 한편으론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데, 루인이 무식한 건 날씨와 계절변화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후후후. ;;;;;;;;;;;;;;;;;;;

다행히 사무실은 따뜻하다. 쉬고 싶다는 몸과 죽을 때면 영영 쉴 수 있다는 예전 어디선가 들은 말과 석사 논문만 쓰면 그래도 한 일주일 정도는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그래도 지금이 좋다.

[논문]Stone, Sandy – The Empire Strikes Back: A Posttranssexual Manifesto

제목: The Empire Strikes Back: A Posttranssexual Manifesto(Electronic version)
저자: Sandy Stone
발행처: http://www.actlab.utexas.edu/~sandy/empire-strikes-back
발행일: 1993

#루인의 설명
1979년 Janice Raymond는 [The Transsexual Empire: The Making Of The She-mal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레이먼드는 이 책에서 mtf 트랜스섹슈얼을 비난하며 여성의 몸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강간이라고 단언한다. 레이먼드의 이런 논리는 향후 (레즈비언) 페미니즘에서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효시이자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Sandy Stone은 바로 이 책에 대한 비판으로 “The Empire Strikes Back: A Posttranssexual Manifesto”을 쓴다. 1987년에 초판이 나온 이 글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한 트랜스젠더 정치학(트랜스젠더리즘)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고전으로 자리 잡는다(트랜스 관련 논문이나 책에서 스톤의 이 글을 참고문헌으로 올리지 않은 문헌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이다). 이 글에서 스톤은 과거의 mtf 트랜스섹슈얼 4명의 자서전을 분석하며 의료담론과 사회 승인 속에서 트랜스임을 부정하고 수술을 기준으로 남성에서 “완벽한 여성”으로 간다는 식의 기술을 비판한다. 이른바 통과[passing]를 비판하는 스톤에게 통과는 사라지는 것, 역사를 지우는 것이다. 통과가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드러내고, 트랜스로서 얘기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스톤에게서의 posttranssexual의 의미이다.
이런 스톤의 지적은 이후,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중요한 지점이었지만(정말 “선언문”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만) 통과담론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가져갔다는 점―성전환 남성이 아니라 원래 남성이라고 얘기하는 이들에게 “통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스톤의 논의가 의도하건 않건 수술과 관련을 맺고 있는 트랜스를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점이다.
또한 Bornstein의 글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이듯, 스톤 역시 트랜스를 젠더 바깥에 위치하는 존재로 두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젠더를 트랜스한다는 것이 젠더와 무관하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젠더와 무관한 존재로 간주하는 건, 오히려 트랜스젠더를 타자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