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는 얘기고 자주 하는 얘기지만 내가 처음으로 글을 출판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던 그때 내가 뭐라고 글을 쓰고 또 출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게 글을 쓸 기회가 생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내게 글을 쓸 기회가 생긴 건 우연이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로 혹은 퀴어젠더 이슈로 글을 쓸 기회 자체는 우연이 아니었다.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출판하는 일은 이전의 활동이 만든 성과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LGBT 인권 운동이 진행되면서 많은 연구활동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때론 소식지를 통해, 때론 등록된 출판물로, 때론 기존 출판물에 투고하며 LGBT 이슈를 말했다. 그 당시 적잖은 활동가가 LGBT 이슈 혹은 퀴어 이슈로 글을 출판하며 한국에서의 LGBT 담론, 퀴어 이론을 구성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지혜 선생님은 1990년대에 레즈비언 이론과 퀴어 이론을 번역 소개하거나 자신의 논의를 구성하며 한국에서의 퀴어 이론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정말 끝내주는 퀴어 연구를 출판하고 있다. 이를 테면 가장 최근 출판된 논문 “역사와 기억의 아카이브로서 퀴어 생애 : 『나는 나의 아내다』(I Am My Own Wife) 희곡과 공연 분석”(
http://goo.gl/ZrLiA2)은 퀴어 연구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인 재현과 비동일시를 큐레이팅이란 새로운 개념어로 대체할 뿐만 아니라 큐레이팅이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울러 퀴어 연구자의 감정이 매력적인 논문을 쓰는데 얼마나 중요한 동력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교가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영어권 퀴어 이론에 ‘비동일시’란 개념어를 이론화한 호세 뮤노즈가 있었다면(작년에 고인이 되었다는 ㅠㅠㅠ) 한국엔 김지혜가 있다.
한채윤 님의 경우,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엔 <버디>란 잡지를 통해 그리고 또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활동가가 어떻게 탁월한 이론적 지형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론이란 학제에서 배우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직접 활동하고 살면서 고민한 내용을 풀어나가는 작업에서 이론이 생산된다. 물론 한채윤 님의 경우, 대학원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학제에서 요구하는 방식(!)의 이론적 세련됨은 부족할 수 있다(이것은 한채윤 님 자신의 평가인데 나는 이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채윤 님의 글을 읽으면 한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퀴어 이론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 실린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 동성애, 성매매, 에이즈” 아니던가.
이 두 분은 단지 예를 든 것 뿐이다. 1990년대부터 여러 연구활동가가 LGBT 이슈로 글을 출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선 김순남 님, 우주현 님, 타리 님, 권김현영 님 등 한국이란 지역에서 퀴어 이론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여러 글을 출판하고 있다. 이런 이들의 노력이 내가 글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2006년에 내가 글을 쓴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출판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엔 한국어로 쓴 퀴어 이론이 없다는 말을 누군가가 한다면,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명백하게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연구를 전면 부정하면서 한국어로 쓴 퀴어 이론이 없고 한국 맥락에서의 퀴어 이론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토로를 한다면 이건 어떤 의미일까? 선배 연구자 혹은 시기적으로 앞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무시하면서 어떻게 탈식민주의적 지식을 생산할 수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맥락에서 이론을 생산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