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한의원

문득 블로깅을 안 한지 오래되었음을 깨달아 뭐라도 남겨보는 잡담

ㄱ. 학위논문 심사를 두 건 했다. 다들 고군분투하는 게, 내 모습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논평을 내가 논문 쓸 때 알았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 시기에는 알면서도 적용이 안 되었다. 정보값으로는 아는데 체화된 지식은 아니었다는 것이리라.

ㄴ. 학술지 투고 논문 두 편을 쓰고 있다. 작년부터 쓰던 논문이 있는데 일하며 쓰다보니 지지부진했는데, 올해는 좀 붙잡고 쓰고 있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 A4 40쪽에 달하자… 잠시 중단했다(보통은 20장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예전에 얼추 써두고 방치한 논문 중 하나를 꺼내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기 위해 읽었을 때는 기깔나게 잘 쓴 느낌이었는데, 수정하려고 하니 엉망진창이다. ㅋㅋㅋㅋㅋ ㅠㅠㅠ 문장 하나하나가 논리적으로 부실한 기분이다. 학부 시절 교양필수로 들은 철학 수업에서 강사가 말해준 이야기가 있다. 철학과 교수 중에 평생 논문을 안 쓴 분이 있었는데 완벽주의자라서 완성을 못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 논문을 드디어 완성했고,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논문 구경하려고 달려갔더니… 옥상에서 해당 원고를 불에 태우고 있더라고… 여전히 부족하다고… 불현듯 그런 기분을 알 거 같이, 다 뜯어고치고 싶은 기분과 싸우고 있다. 뭐라도 성과를 좀 내야지. 근래 학술적 성과가 없음을 깨닫고 인생을 반성하고 있다.

ㄷ. 나의 주변 사람들은 아는데, 신촌에 열렬하게 신봉하는 한의원이 있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면(심각한 상태면 입원해야…), 어지간한 극육통 등은 침으로 조지는 곳이다. 지난주부터 목이 많이 아파, 자고 일어나면 목을 움직이기 힘든 정도로 아픈 상태였다. 신촌에 갈까 했지만 귀찮아서 동네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곳도 나름 침을 좀 놓는 곳이지만 만족스럽지 못 했다. 그리고 어제 신촌에 갈 일이 있어 그 한의원에 다녀왔다. 침을 많이 아프게 놓는 편이고, 환자가 비명을 지르면 한의사가 만족스러워하는데, 다음날 되면 효과는 확실하다. 오래오래 운영해주세요.

미수습, 삼색도, 기울인 몸들 후기

01

4.16 추모 연극인 <미수습>을 봤었다. 무료 공연이라 한 번만 봤는데, 몇 번은 더 예매할 걸…이라는 후회가 있었다. 여당극 공연은 언제나 예기치 않는 놀라움과 충격을 주는데 이번 공연도 그랬다. 모든 배우는 초반을 제외하면 객석에서 함께 했고, 무대는 (수어통역사를 제외하면) 한국어와 베트남어 자막과 빛과 추모로 채웠다. ‘명’이 ‘구’로 바뀌는 시간, 실종자가 미수습자로 바뀌는 순간을 질문하면서 참사의 유족, 그리고 언제나 기억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답이었고, 남겨진 이를 남겨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어떤 식으로 재현할 것인가에 있어, 배우가 대리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무대를 자막과 빛의 변화로 남겨두는 방식이 저 무대 어딘가에서 떠오를 것만 같아, 미수습을 더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듯하여 슬프고 무거웠다.

02

뮤지컬 <삼색도>를 봤었다. 이메일로 알려주셔서 냉큼 예매했고, 일부러 정보를 찾지 않고 봤는데… 재밌었다. 둘째 줄에서 봤는데 배우들의 연기가 깊었고 노래도 좋았다. 연극이나 공연에서 배우가 무대 장치에 없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몸짓과 표정을 지을 때, 마치 내가 그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연을 좋아하는데 이 공연이 그랬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이 무대 장치의 의미를 바꿔내는 순간순간이 좋았다. 하지만 관객이 너무 적어서 안타까웠다. 재미있는데 왜… ㅠㅠㅠ 한 번은 더 보고 싶은데 시간 조율이 쉽지 않네 ㅠㅠㅠ

03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울인 몸들> 전시를 봤다. 모르고 있었는데, <론 뮤익> 전시를 보러 간 날, 우연히 구자혜 연출님을 만나서, 알게 된 전시였다(압도적 감사!). 김영옥 선생님 강연(혹은 공연)을 신청해서 함께 관람했는데, 매우 좋았다. 아픈 몸, 느린 몸, 나이든 몸, 장애가 있는 몸, 이주해서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몸 등 비규범적이라고 분류되는 몸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그리고 다 둘러보고 나면, 장애인 관련 시설을 어떻게 지역의 커뮤니티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상상하게 되더라. 시설과 탈시설이라는 질문 구조가 아니라, 시설을 커뮤니티로 재구성하고, 모든 지역을 또한 다양한 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설로 다시 상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남겨서, 좋았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꼭 관람하시기를. 겸사겸사 론 뮤익 전시도 함께 관람한다면 이래저래 주제와 고민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어 좋기도 하다.

김영옥 선생님 강의는 매우 좋았다. 나는 종종 김영옥 선생님이나 김현미 선생님 강의를 한 학기 길이로 다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두 분에게 배운 것이 많아 시간이 맞으면 특강 같은 것을 들으러 가곤 하는데 이번에 시간이 맞아서 전시도 볼겸 겸사겸사 갔다. 강연(혹은 공연, 왜냐면 로비에서 강의를 해서) 노년되기라는 주제를 생태계로 연결해서 다시 사유하는 과정을 들었고, 여러 가지로 배움이 많았다. 강의 내내 메모를 많이 남겼는데 여기에 적어도 될지는 몰라서.

중립적인 아카이브는 없다

[미술 평론] 급진적 예술 실천을 위한 기억의 훈련들

위 링크의 글에서, “검열, 수탈, 무례”의 하단에 있는 ‘더보기’를 열어주세요.

조그마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는 노동자로서, 아카이브는 언제나 정치적 가치를 지향하는 작업이라고 말해왔다. 정치적 가치를 지향하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편향적이며, 그 편향성이 만드는 긴장, 불안, 위험성, 그리고 가치를 계속해서 질문하면서 또다른 아카이브적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특정한 종류의 편향성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조그마한 아카이브의 설립 취지이자 운영 취지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이것을 충분히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아카이브에서 일을 한 햇수만큼의 업[黑黑業]보를 쌓고 있기도 하다.) 또한 문제가 된 전시에 얼마간이라도 기여했는데, 그 전시에 참가한 모든 아카이브는 특정한 방식의 편향성과 정치성을 기관의 가치로 삼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남웅님의 글에 적혀 있는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다른 납득할 이유라면 모르겠는데, 중립이 이유라면 아카이브 전시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장애인인권영화제 문구가 딱 적당할 거 같다. “기록으로 저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