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저녁 팀 울프Tim Wolf의 다큐멘터리 <테네시 윌리엄스의 아들들>을 아메리칸센터에서 봤습니다. 다큐 자체는 상당히 재밌습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서술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전 이제까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와 뉴욕 중심으로 논의하는 퀴어 이슈를 접했는데 뉴올리안즈 지역의 퀴어 이슈를 피상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울러 운동을 지속하고 삶을 지속하는 힘은 고통의 전시나 과격한 행동이 아니라 유쾌함과 쾌락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요. 이 다큐멘터리를 접할 더 많은 기회가 생겨서 더 많은 사람이 이 다큐를 보면 좋겠어요.
영화 상영 후 감독과 대화를 진행했는데 이 시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감독의 답변은 훌륭했습니다. 통역자도 대단했고요. 여기엔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감독과 질의응답을 하는 자리는 영어 경연장이었을까요? 영화를 본 다음 감독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인데 마치 영어 경연장인 것처럼, 훌륭한 통역자가 있음에도 저를 포함한 두 명을 빼면 다들 영어로 질문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나름 유창한 영어로 질문했지만 어떤 사람은 영어 듣기가 안 되는 제가 듣기에도 별로다 싶을 수준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곳은 자신의 영어 말하기 실력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감독과 영화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인데요. 통역을 믿을 수 없었느냐 하면 비교적 꼼꼼하게 통역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영어로 질문하는 내용도 별로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미국 동성애 운동과 한국 동성애 운동을 비교해달라는 것.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비교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한국의 운동사를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한국에 며칠 머문 백인감독에게 두 나라의 운동을 비교해달라니요. 얼마나 부끄러운 질문인지 본인은 알까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상황을 문외한임에도 단지 미국 시민권자 백인 남성이란 이유로 그에게 묻는다는 게 얼마나 식민지적 사고방식인지 알까요? 어떤 사람은 감독에게 차별을 겪은적 있는지 물었습니다. 절로 ‘헐..’이란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다른 질문도 비슷했습니다. 감독의 답변만 훌륭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굳이 영어로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차별 경험과 관련해서 질문하려고 했다면, 차별을 겪은적 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차별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었는지, 차별과 이에 저항하는 행위를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LGBT 이슈를 다룬다고 하면 어디서든 나올 수 있는 뻔한 질문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두 유 노우 캉남스타일?”, “두 유 노우 싸이?”라고 묻고,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에게 “두 유 노우 캉남스타일?”이라고 묻는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자신이 어떤 주제를 논하는 자리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 하고, 상대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으면서, 그냥 어디서나 대충 할 수 있는(그래서 사실은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런 질문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다른 L/G/B-T 활동가가 질문을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오는데 도대체 왜 질문을 안 하는 것이냐고!!!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LGBT 혹은 퀴어 관련 행사에 참석할 때 저는 가급적 질문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걸 궁금해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니까요. 아울러 아마도 저보단 다른 사람의 질문이 훨씬 가치있을 텐데 내가 먼저 질문해도 괜찮을까란 고민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하여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시간을 뺏을 필요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어떤 자리에선 이런 저의 태도가 상당히 의미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자리에선 적극 질문을 해야 한다는 고민을, 지난 목요일 처음으로 했습니다. LGBT 혹은 퀴어 이슈를 적극 사유하는 사람이 LGBT 행사에서 적극 질문을 하지 않아서 “두 유 노우 캉남스타일?”과 같은 허접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면 이것은 결국 LGBT나 퀴어에게만 손해니까요. 논의의 수준을 바꿔나가는 작업은 LGBT/퀴어 활동가와 연구자의 주요 활동 중 하나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동성애 운동을 비교해달라”는 따위의 질문이 얼마나 허접한지 깨달아(다른 자리였다면 이 질문이 훌륭할 수 있겠지만)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주요 운동이고요. 그러니 LGBT/퀴어 이슈를 둘러싼 논의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적극 질문하는 건 가장 쉽지만 중요한 운동이라는 걸, 지난 목요일에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