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단체는 여성단체와 연대하는가?

폭력 단체와 관련한 글을 쓸 때 실제 염두에 둔 어떤 정황 판단이 있었다. 차마 쓸 수는 없지만.. 쓸 수 없는 건 자기 검열이라기보다 아직은 짐작이라 선뜻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어떤 질문을 공유하자면, 제목과 같다. LGBT 단체 혹은 한국의 동성애 단체는 여성운동/여성주의 단체와 연대하는가? LGBT 혹은 동성애 단체는 여성주의단체에 연대를 종용하기도 한다. 그럼 여성주의단체의 의제나 활동에 동성애 혹은 LGBT 단체는 연대를 종용하는 만큼 참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이게 고민이다. 각 단체의 활동은 페미니즘과 퀴어정치, 이 두 정치학을 주요 정치적 밑절미 삼아 활동하고 있는가? 물론 이 질문은 바로 나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두 정치학의 자장에서 나는 움직이고 있는가?

Suzanne Pharr – Homophobia: A Weapon of Sexism / 호모포비아와 성차별주의의 교차점

Suzanne Pharr. Homophobia: A Weapon of Sexism

지난 오 월, 수업 교제로 일부를 읽고 깨나 감동했습니다. 왜 이 책이 아직도 번역이 안 되었지? 아.. 한국엔 번역 안 된 책이 정말 많지… 하지만 이 책은,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과 함께 상당히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할 텐데.. 여성학입문서, 퀴어이론 입문서, 혹은 여성주의와 퀴어이론을 교차하는 입문서로 정말 좋을 텐데.. 학교 교제로 쓰기도 좋고 활동가들이 읽기에도 정말 좋고… 이런 아쉬움에 이번 여름, 그냥 가볍게 읽었습니다. 영어 자체는 쉬운 편이고(물론 영어를 읽는데 부담감이 덜한 경우에 한정한 이야기) 모르는 단어를 건너뛰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은 점은, 호모포비아와 성차별주의의 교차점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수잔 파는, 한국으로 치면 한국여성의전화연합처럼 ‘아내 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성차별주의와 호모포비아, 레즈비언 혐오가 어떻게 동시적 사건인지를 얘기하는 워크숍을 엽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깨달음을 이 책에 적었고요. 그래서 정말 쉬운 언어로 여성운동에서 호모포비아를 종식시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얘기합니다. 사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호모포비아가 지속되는 한 모든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 역시 지속된다..랄까요.. 흐흐흐.

이 책을 읽으며 한국에 번역되면 참 좋겠다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외국이라고 어디 다를까 싶지만, 한국 역시 여성운동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 많은 수가 비이성애자임에도 여성운동은 어느 정도 이성애-비트랜스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얘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문제라는 걸 아는 경우에도 쉽게 바꾸기 힘든 상황도 있고요. 아울러 한두 명의 활동가가 단체의 성격, 운동의 성격을 바꿔내기엔 참 어려운 일이죠. 그렇다고 여성운동에서 노골적 비이성애자 혐오가 있느냐면 꼭 그렇진 않겠지요. 아, 아니, 적어도 제게 친숙한 단체에선 비이성애자 활동가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지만, 다른 단체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전해 듣는 말로는 쉽지 않다고, 어려움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여전히 포비아가 심한 곳도 있다고 하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저는 이 책이 참 좋았습니다. 여성운동을 하는 비이성애자 활동가가, 어떻게 하면 비이성애 이슈 혹은 호모포비아 이슈를 성차별주의와 결합해서 함께 운동할 수 있을까를 적고 있으니까요. 혹은 비이성애/퀴어 이슈를 낯설어 하면서도 여성주의와 연결해서 읽었으면 하는 동료 이성애 활동가에게 권하면 딱 좋을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가 활동 맥락에서 고민을 풀어나가고 있다보니 글 역시 매우 쉽고 생생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논의 전개에서 좀 더 섬세하고 좀 다르게 얘기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아쉬움을 상쇄할 어떤 매력이 존재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누군가 번역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제가 직접 번역할 여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저는 결코 초벌 번역을 할 실력이 아니거든요. ㅠㅠㅠ. 그래서 다른 어떤 분과 같이 하거나 단독으로 번역 작업을 할 분이 계시면 참 좋을텐데요.. 혹시 이번 가을엔 휴학을 한다거나 일을 좀 쉰다거나 하면서, 영어를 매우 잘하진 않지만 사전이 있으면 읽고 번역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 분 안 계시나요? 더구나 소위 퀴어 운동과 여성 운동이란 이분법에 문제 의식을 품으면서 이 둘을 동시에 얘기하는 글을 소개하고 싶은 바람을 품은 적 있으시다면 더 좋고요. 원하신다면 출판사에 보내는 번역제안서는 제가 쓸게요.. 번역만 하실 분.. 구합니다.. 번역해주세요.. ㅠㅠㅠ

퀴어페미니즘

수업 쪽글입니다. 이 글로 지난 학기 수업 쪽글은 끝. 퀴어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쓴 글에 대한 요약 정리 쪽글이고요. 입문서 성격이 강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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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어떻게 만날까? 둘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논의를 전개하는 정치학일까,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며 또 다른 지형을 탐문하는 정치학일까? 물론 단 한 번도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그리고 트랜스젠더리즘)이 별개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이런 식의 질문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곤란함을 야기한다. 별개인 적 없는데 별개로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을 구분해서 이해하는 이들에게 이 질문은 유의미하다. 이미 1990년대 중반 페미니스트와 퀴어 이론가가 둘의 접점을 모색했음에도(Feminism Meets Queer Theory) 여전히 둘을 분리해서 사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을 별개로 사유하는 이들에겐 일단 각각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그 다음 연결하는 방식이(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해도) 수월하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선 유용할 수도 있다.
퀴어 페미니즘을 논하는 미미 마리누치(Mimi Marinucci)의 책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교차점을 출발한다. 이것은 1994년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Against Proper Objects”에서 페미니즘의 주요 논제를 젠더로만 환원할 수 없다는 비판적 입장보다는 1992년 헨리 에이브러브 등(Henry Abelove, Michele Aina Barale, David M. Halperin)이 편집한 책 The Lesbian and Gay Studies Reader의 서론에서 시도한 구분에 따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이브러브 등은 페미니즘이 젠더에 초점을 맞추고 논하듯 레즈비언과 게이 이론은 섹스와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춘다며 레즈비언과 게이 이론을 규정하려 했다. 마리누치 역시 “퀴어 이론의 경우, 섹스와 섹슈얼리티를 강조한다. 페미니즘 이론의 경우 젠더와 섹스를 강조한다”(106)고 말하며 둘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이때 페미니즘은 무엇인고 퀴어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퀴어 페미니즘에 있어 페미니즘은 대체로 제2 물결 페미니즘을 뜻한다. 마리누치는 제2 물결 페미니즘을 탐문하는 작업은 대개 두 가지 경로로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첫째, 포스트 페미니즘은 제2 물결의 미션이 이미 성취되었기에 페미니즘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얘기한다(107-8). 둘째, 제3 물결 페미니즘은 제2 물결 페미니즘의 방식으로는 위계와 권력을 문제 삼을 수 없기에 제2 물결은 철지났을 뿐만 아니라 진부하다고 주장한다(108). 포스트 페미니즘과 제3 물결 페미니즘 혹은 퀴어 페미니즘은 둘 다 제2 물결 페미니즘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만 대응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페미니즘의 불필요를 논한다면 후자는 새로운 페미니즘의 필요를 주장한다. 마리누치에게 퀴어 페미니즘은 새로운 필요로서, 지금 등장해야 하는 흐름이자 방향이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모두에서 인종차별주의와 계급차별주의가 존재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반성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지배의 논리와 위계를 문제삼아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은 교차한다. 퀴어 이론은 언제나 이분법과 위계에 비판적이며 페미니즘 역시 억압과 위계에 비판 이론이다. 그리하여 퀴어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내에 존재한 LGBT 혹은 퀴어 혐오, 퀴어 연구/섹슈얼리티 연구에 존재한 여성 혐오를 방지하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둘의 교차점에서 더욱 날카로운 비판 이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