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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끝났지만…
지난 일요일을 기점으로 원고 작업은 대충 끝났습니다. 아직도 더 수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참 묘하게도, 저 혼자 정한 마감 시한을 계속 연기했습니다. 끝내기 싫었달까요? 두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대충 500~600매를 썼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무리라고 말했을 듯해요. 하지만 ‘루인 & Co.’ 글공장 공장장이 대책 없이 계약을 한 덕분에, 사원만 죽어났습니다. 이 악덕사장!!
하지만 즐거웠어요. 글을 완성해도, 완성하지 않아도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 좋았으니까요. 아울러 단기간에 여러 편의 글을 쓰면서 주제를 세분화하고, 글마다 조금씩 다른 얘기에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기회였으니 저로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읽는 사람이야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겠지만요. 크. ㅠㅠ
글은 쓰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말, 글을 쓸 때마다 새삼스러운 사실처럼 깨달아요. 전 제가 무엇을 잘 모르고 있는지, 무엇을 전혀 모르는지,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죠. 제가 얼마나 무식한지도 깨달았고, 제가 글을 얼마나 못 쓰는지도 깨달았고요.
공동원고가 하나 남아 있지만, 공동논문은 보조 역할이니 올해 마감인 저의 원고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조금 더 일찍 끝낼 수 있는 마지막 원고를 계속해서 연기했습니다. ‘한 번만 더 고치자, 그래, 이번 한 번만 더 고치자…’라면서요. 글이라는 게 고쳐도 고쳐도 또 고칠 곳이 나오잖아요. 열 번 정도 고쳤는데, 마지막이란 기분으로 다시 읽으니 또 고칠 곳이 있네요. 그래서 다섯 번 정도 더 고치고, 마지막이란 기분으로 읽으니 또 고칠 곳이 있네요. 제가 글을 워낙 못 쓰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니,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워요. 더 고치고 싶으니까요.
더 고치고 싶다는 바람, 이 바람이 자체 마감을 계속 연기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이 좋거든요. 이 원고를 끝내면 공허해서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끝내고 얼른 놀자는 기대는 없었고요. 하지만 이러다 끝이 없겠다 싶어, 그냥 마무리지었습니다. 만약 단행본이 나온다면, 단행본 작업할 때 다시 고쳐야 하니, 그때 수정하기로 하죠. 하지만 그때 다시 읽으면, 이렇게 못 쓴 글을 공개했다고 자학하겠죠?
원고 작업이 끝났으니 이제 뭘 하냐고요? 원고 작업을 빌미로 미뤄둔 일을 처리 해야죠. 크크크. 많은 일을 지연했거든요. ;;; 사실 지금 이 글은 지난 월요일에 초고를 썼습니다. 그런데 미뤄둔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이제야 공개하네요. 하하. ;;;
아무려나 원고 작업은 끝났지만, 글쓰기 자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놀아야죠. 글은 꾸준히 써야만 느니까요. 🙂
+
내년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ㄱ. 유섹인과 프로젝트, 퀴어락은 여전하고요.
ㄴ. 공저 단행본에 실을 글 한 편,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또 다른 남성성.
ㄷ. 작년에 쓴 “이태원 역사 쓰기” 원고를 출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고요(계간지 연재? 단행본 출간? 혼자 망상에 빠져 있습니다 크크).
ㄹ. 아직 누구의 제안도 없지만 원고 하나를 쓸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ㅁ. 또 다른 세미나(?)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만… 이건 꽤나 괴로운 작업일 듯
ㅂ. 기존의 세미나와 글쓰기 모임은 계속해서 진행하지 않을까 싶어요
ㅅ. 글은 부족하지만, 마감은 최대한 지키는 인간입니다. 원고 청탁 환영합니다!! 흐흐. 쓸 수 있는 주제는 잡다하고 조율할 수 있습니다. ( “);; 고료는 걱정마세요. 🙂
어떤 행복을 찾고 있는 걸까?
어떤 분과 문자를 주고 받은 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라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보냈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에 행복해지는커녕 조금은 우울했다. 운동을 하건, 공부를 하건, 뭘 하건 결국은 행복이다. 관건은 어떤 행복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겠지. 어떤 사람은 행복이란 단어 대신 꿈을 사용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공을,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또 어떤 사람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나는 여기에 ‘행복’이라는, 다소 철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모른다는 것을…
아침, 아니 오전에 라디오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나왔다. 그는 한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유예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회사를 쉬었다가 결국엔 그만두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예전이라면 나는 ‘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가능성은 모두 없는 것처럼 살고 있어, 훗’ 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철없는 거 같은 삶이지만 내겐 내가 바라는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삶이니까. 재정적으론 풍요롭진 않지만 행복이란 측면에선 풍요로우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그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내가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이런 기분에 빠져 산 게 얼추 1년이 넘은 듯하다. 1년 동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 걸까 고민하는 나날.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하다. 무려 초등학교 시절부터 품었던 어떤 꿈. 나는 그 꿈을 이뤄보려고 이런 저런 노력을 하기도 했고, 우회하기도 했다. 우회적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늘 끈기가 없었고, 시도하다 멈추고, 시도하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물론 그 일만이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매순간의 욕망에 충실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대부분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언제나 “생계가 위태로워ㅠ”라며 징징거리지만, 그래도 현재 삶과 생활방식이 불만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할까?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떤 행복을 추구한 걸까? 아님, 지금까지 추구했고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한 행복의 의미가 이제는 바뀐 걸까? 아님 나태해서 여전히 유효한 행복에 충실하지 않아 이런 걸까?
정말 난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살고 싶은 행복은 어떤 얼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