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밥을 해먹기 시작했고, 아울러 도시락을 싸다니고 있다. 도시락을 싸는 건 귀찮을 것도 없고 어려운 일도 아니거니와, 도시락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좋은 효과를 주고 있다. 한 번 연구실에 오면 건물 밖으로 안 나가도 되고, 점심 겸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물론 밥 먹으러 나가는 걸 빌미로 그나마 했던 걷기 운동을, 이제 전혀 안 하는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_-;;
어제는 처음으로 참치캔을 샀다. 네 개를 묶어서 파는 걸로. 반찬으로 먹으려는 건 아니고;;;, 고양이에게 주려고.
지난겨울, 학교 도서관 근처에 고양이가 있었다. 사람들을 피하기는커녕 다가가면 가만히 있고, 먹을 것을 주면 따라오기도 하는. 어느 순간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는 것에 익숙했는지, 배고파 보이는데도 먹을 것 찾기보다는 사람들을 따라다니거나, 사람들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모습. 그땐 마냥 귀여웠고, 좋았다. 그러다 설이 다가와서 조금 일찍 부산에 가려고 했을 때, 그 고양이가 신경 쓰였다. 과연 설 연휴가 끝난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사람들이 주는 먹을 것에 익숙해서 음식을 직접 찾는 습관이 사라진 상태에서, 학교가 거의 텅 빌 설 연휴 기간 동안 굶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굶어 죽은 건지, 학교를 떠난 건지,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지만 루인이 못 알아보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설 연휴가 끝나고 돌아왔을 때 그 고양이는 안 보였다. 그땐 그냥 싸한 느낌이었다.
어제 오후,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픈 걸까.
몇 주 전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연구실이 있는 건물 근처에 고양이 몇 마리가 산다는 걸 알았다. 근데 이 고양이들은 사람들을 피하는 편이다. 사람 소리만 나도 숨고, 마주보다가 조금만 움직여도 어딘가로 숨고. 사람이 나오는 기척만 있어도 아예 숨어서 나오질 않는 정도다. 그러니 이 고양이들에게 먹을 걸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을 리 없다(고 짐작한다). 그런데 이 건물에 와서, 고양이를 만나기 시작한 지 좀 되었는데, 어제 오후처럼 우는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 배가 고픈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연구실에 같이 있는 사람도 비슷한 얘길하며, 아침에 건물로 오는 길에,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참치캔을 핥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 순간, 어제의 내일과 모렌 참치캔을 사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아침, 그 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건물 옆에 있는, 쉬는 곳)에 참치캔을 들고 갔지만 나올 리 없다. 고양이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 캔을 놓고 가려고 했지만, 의자에 앉아 있으면 오히려 안 나올 것 같아, 그냥 고양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캔을 두곤 연구실로 돌아왔다. 몇 시간이 지나 복도를 걷다가 캔을 둔 곳을 보니, 캔이 뒤집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먹긴 먹었나보다 했다. 오후엔 두유 한 잔과 참치캔 하나를 뒀고.
이 이상 줄 의향은 없다. 추석이 끝나고 다시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목요일부턴 주지 않을 계획이다. 그러다 일요일 아침 학교 오는 길에 고양이가 떠오르면 편의점에 들러 참치캔 두어 개를 살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길들고 싶지가 않아서. 고양이가 루인을 길들이는 건지, 루인이 고양이를 길들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_-;; 그 어느 쪽으로도 길들고 싶지가 않다(라고 썼지만, 이미 고양이가 루인을 길들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크크크;;) 설 연휴가 끝나고 사라진 고양이(루인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가 떠올라서기도 하고, 그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꾸려가고 있는 삶에 가급적 간섭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누가 그 캔을 가져다 두는지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뭐, 사람의 기척만 있어도 숨어버리니 누가 가져다 두는지 알 수도 없겠지만. 흐흐. 그냥, 걔네들은 걔네들 방식으로 살고, 루인은 루인이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그저, 그 고양이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 주말이나 연휴 기간에만 슬쩍, 누군가 흘린 것처럼 가져다 두는 정도. 그렇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루인의 판단으로 최소한이라고 여기는 수준에서만 개입할 수 있게.
딱, 이 정도의 인연이면 좋겠다.
+
근데 고양이들, 햄도 좋아하나요? 인근 할인점에 콩고기로 만든 햄을 팔았는데(지금도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햄도 먹으면 담엔 햄을 줄까 해서요… -_-;; 캔의 뚜껑을 확실히 제거하고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캔에 베일까봐 걱정도 되고…. 이러다 나중엔 고양이용 접시를 마련하는 건 아닌가 몰라;;;;;;;
오.. 동네 고양이 지킴이 루인님. ㅎ
근데 얼마 전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에게서 고양이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건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 고기를 좋아하지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근데 참치캔을 먹는 걸 보면 생선 좋아하는 거 같네요.
고양이들도 저마다 취향이 다른 걸까요? ㅎ
히히히. 지킴이까진 아니고, 그저 괜히 친한 척 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랄까요. 흐흐 ;;;
근데, 생선을 좋아한다는 건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니, 정말 새로운 배움이에요!
간혹 들러서 글 읽고 가는 사람입니다.
고양이는 염분에 약해서 사람의 음식을 주시면 신장병의 위험이 굉장히 높습니다. 길에 보이는 뚱뚱한 고양이들은 잘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장병으로 몸이 부은 것이랍니다. 고양이전용캔을 사람이 먹으면 처음은 짭짤하다가 굉장히 싱거운 것을 느낄 수 있지요.(직접 먹어봤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길고양이라면 사람이 먹는 참치캔이나 소시지(스팸은 안됩니다. 그건 지나치게 짭니다.)정도는 괜찮습니다. 길고양이라서 집고양이는 안되지만 먹어도 된다-란 말은 아니고, 길에 있는 쓰레기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지요. 고양이는 식성이 까다로운 동물이라 개개의 취향에 따라 식성이 매우 다르지만, 길에 있는 고양이들은 대체로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햄이 어떤 햄을 뜻하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마늘이 들어가거나 한것이 아니라면 잘 먹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고양이전용캔을 구입하시고 싶으시다면 근처 동물병원에서 구입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길고양이라면 캔보다는 사료를 추천합니다. 사료는 캔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양이 많으며 오랜기간 보관도 용이합니다. 너무 딱딱한 것이 아니라면, 고양이는 좀 씹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고양이가 바로 먹지 못하는 경우에도, 며칠이 지나더라도 상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경우에도 괜찮습니다.(사료가 물에 적당히 불면 고양이들이 더욱 좋아하더군요. 아기 고양이의 경우는 사료를 일부러 불려주시는분들도 있습니다.) 사료로는 네츄럴발란스가 좋지만 기호성이 갈리기도하고 용량에 비해 가격이 상당히 비쌉니다. 또 캣챠우란 사료가 있는데 기호성은 보통입니다. 이건 저급사료라서 기피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가격대비 양이 많아 길고양이에게 주시는 분들이 많이 구입하더군요. 기름기가 많아서 설사하는 고양이도 있다지만 길고양이라면 그보다 더한 음식물쓰레기를 먹고 사니까, (잔인한 말이지만) 이정도의 사료도 소화 못하는 고양이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위스카스의 경우도 별로 좋은 사료는 아니지만 기호성에선 좋습니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시는 분들은 상당수 계십니다. 하지만 깨끗한 물을 주시는 분은 아직 없더군요. 길의 고양이들은 굶주림과 동시에 지나친 염분과 신선한 물의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먹이를 주실때 깨끗한 생수를 함께 놓아두신다면 정말 좋겠군요.
길의 고양이들은 그 수명이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간혹 가엽다는 이유로(대체로 어미 잃은 아기 고양이를) 사람손을 타게해놓고 책임지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런 경우엔 다시 길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거든요. 루인님이 생각하시는 수준의 도움이 고양이에게 가장 딱 좋은 정도 같습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소중한 정보예요. 너무 고마워요. 그저 좋아한다고만 했지, 고양이에게 염분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와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덕분에 무언가를 준다면 좀 더 신경써서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도 그렇고요!
다시 한 번, 정말 고마워요.
엇.. 동네 골목길을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들이 하도 다들 뚱뚱해서 탐욕스럽다고 눈쌀찌푸렸는데 그게 살이 아니라 붓기였군요.. 헐..
그러니까요. 루인도 붓기라는 부분을 읽고 무척 놀랐어요.
전 고양이는 참 싫고 무서워요.
사진으로 보거나, 아주 귀여운 아기고양이면 괜찮은데, 나머지는 다 무섭고 싫고 그래요.
공포영화의 영향일까요..
공포영화하니까 깨달았는데, 그러고보니 공포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동물이 고양이네요. 고먕이의 미묘(微妙? 美猫?)함인 거 같아요. 흐흐흐. ;;;
시험이 다 끝났나 보네요, 축하해요^^ 이제 천천히 논문 쓰면 과정이 다 끝나겠군요…몸 건강하시고요
다 끝난 건 아니고 아직 한 과목 남았지만, 당장의 발등의 불은 꺼서 좋아하고 있어요. 헤헤. 고마워요. 🙂
시진씨도 건강하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