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람들은 성염색체의 종류에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성염색체가 XX든 XY든, 또는 그것과 다르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왜 가질 수 없는 것일까? ‘금동’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극단이다…. (p.438-439)
“남자가 될지 여자가 될지를 정해서 어느 한쪽 기능을 버릴 순 없어요.”
“망설임 때문이야?”
“그게 아니라, 그러면 지금의 내가 아닐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오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꼭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요. 물론 장래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일도 있지만요.” (p.273)
※장르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조금 있어요.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일단 사서 읽자고 했다. “아내를 사랑한 여자”라니, 제목이 너무 직접적이잖아, 라고 궁시렁거리면서. 그리고 다 읽은 지금 인단은, ‘의외로 괜찮다'(방점은 알아서 찍으세요.. 흐흐)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가에게 뭔가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엄청난 혐오발화만 없어도 다행이겠거니 했는데, 그 반대였달까. 무엇보다도 열심히 취재하고 많은 공부를 하고 나서 이 글을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랄까. 그래서 트랜스젠더나 성별과 관련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나쁘지 않은 입문서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느낌은 많이 남는다. 추리소설형식의 작품을 주로 쓰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 이 장르를 트랜스젠더의 삶에 적용하면서 트랜스젠더의 삶을 추리소설처럼 풀어야 할 사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주요 등장인물의 한 명인 미쓰키의 정체성과 정체를 파악하는 과정은 “트랜스젠더의 정체”를 파악해가는 과정이며, 비록 개개인의 삶을 다룬다고 해도, 해결하고 파악해야 할 대상으로 남겨진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다른 한 편, 호적등본의 교환을 엄청난 사건으로, 이 소설의 핵심적인 비밀이자 결코 누설해선 안 되는 일로 얘기하는데, 조금 싱거웠다. 이 소설을 쓴 시기(일본에서 2001년에 출간)와 이 소설을 읽은 시기(한국에서 2007년)가 만들어낸 차이일 수도 있고, 히가시노 게이고와 루인이 이런 일을 체감하는 방식이 달라서일 수도 있고.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엄청난 비밀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호적교환을 얘기하는데, 읽는 루인은 “고작 이걸 엄청난 비밀처럼 얘기하는 거야?”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호적등본교환이 쉬운 일이라거나 쉬운 일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 얘기하는 그 정도일까엔 의문이 남았다.
아무려나 한 편의 소설로서, 재미는 있다. 의외로 몸에 콱, 와 닿는 구절들도 적지 않고.
*오타발견
빨간 글자 밑에서 두번째 줄, 그리고 다 읽은 지금 인단은=>일단은… ㅎㅎ
아하하하하하하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