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들의 관심과 호위 속에서 ‘무지개 건널목 시위’는 무사히 끝났다. ‘무지개 건널목 시위’란, 광화문 사거리의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일 때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글귀가 들어간 현수막을 들고 횡단보고에 서 있다가 파란불이 끝날 즈음 재빠르게 돌아오길 반복하는 것. 첨엔 한 교통결찰이 뭐라고 큰소리를 냈지만, 끝날 땐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끝났다. 아하하. 경찰과 협상한 분이 다큐를 찍는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나. (사진이 있는데 현재는 비공개 게시판에 올라와 있어서, 조만간에 공개게시판에 올라오면 그때 추가할 게요. 흐흐.)
첫 시작 때는 조금 긴장했다. 사전 준비를 하며, 불법시위로 경찰이 연행할 경우를 대비하는 얘기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평소엔 잘 없는 경찰들이 횡단보고 근처에 있는 것도 조금 불안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찰과 이야기가 잘 되는 분위기인데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며 지나갈 땐 재밌기도 했다. 얼마간의 불안이 있는 즐거움. 혹은 재미. 30분간 횡단보도를 뛰어다닌 시간이 무척 즐겁게 남으리라.
끝나곤 곧바로 1인 시위를 하러 갔다. (역시 조만간에 사진이 올라오면 추가하지요. 흐흐) 인형 둘과 함께 나가는 1인 시위. 곰돌이 인형은 옆에 앉혀두고 토로로 인형은 한 손으로 안고 1인 시위를 했다. 피켓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형을 들고 있으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부드럽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예전에도 1인 시위를 한 경험이 있다는 식의 오해를 줄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고. 다만,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 단식시위를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1인 시위를 하는 피켓과 인형에 꽤나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위를 하는 방법을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분이(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어떤 분인지, 아님 긴급행동을 처음부터 알고 있고 같이 활동도 하는데 루인이 얼굴을 모르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_-;; 만약 후자라면 죄송해요!!) 따뜻한 두유를 한 병 주고 가셨을 땐, 무척 힘이 났다. 고마워요!!!
하지만 2시간 동안 가장 인상적인 일은 의무경찰들의 반응이었다. 지난주부터 1인 시위를 했으니 낯설지는 않으리라. 문제는 의경들의 시선이었다. 의경들은 힐끔힐끔 피켓의 내용을 읽고 있었다(라고 루인은 해석했다). 루인이 쳐다보는 걸 눈치 채면 얼른 피하지만 피켓의 내용(7개 차별항목과 성별의 정의/성별정체성 항목)에 드러낼 수 없는 관심이 있음을 느꼈다(루인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느낌은, 아마 의경들 역시 이런 7개의 차별항목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 사람들 중엔 학력이나, 성적지향, 가족상황 등등의 여러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의 표정이 복잡하게 다가왔다. 의무경찰이라는 위치로 인해 동조할 수 없지만 피켓을 통해 얘기하는 내용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갈등.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의경들이 이러한 이유로 쳐다보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복잡한 표정들을 포착할 때마다, 기묘하면서도 재밌는 감정을 느꼈다. 비단 의경들뿐이랴. 정부중앙청사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도 이와 관련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을 테고, 아무런 관심을 안 보이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처음 보는 사람처럼 피켓의 내용을 자세히 읽으며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시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잠깐이지만 음악도 들었고(Cooper Temple Clause), 열심히 시위하는 와중에 짬짬이 피켓을 매고 서있으면서 논문도 읽었다-_-;;; 흐흐. 읽고 있던 논문은, 예전에 이곳에 간단한 글을 남긴 적이 있는 Susan Stryker의 “My Words to Victor Frankenstein above the Village of Chamounix”였다. 다시 한 번 읽고 싶어, 어제부터 지하철이나 이동하는 길에 읽고 있는데, 오늘 유난히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몸에 와 닿는 구절들이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의 몸에서, 나는 나 자신이라고 고려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내 몸의 형태[외모/외형]가 나의 욕망을 이성애로 보이게 하는 한, 나는 퀴어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이크로서 나는 여성들 속에서 보이지 않고, 트랜스섹슈얼로서 나는 다이크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아기 엄마의 파트너로서, 나는 종종 트랜스섹슈얼로서, 여성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보이지 않는다. In the body I was born with, I had been invisible as the person I considered myself to be; I had been invisible as a queer while the form of my body made my desires look straight. Now, as a dyke I am invisible among women; as a transsexual, I am invisible among dyke. As the partner of a new mother, I am often invisible as a transsexual, a woman, and a lesbian.”(246)
(#”아기 엄마new mother”는 정확한 번역은 아닌데, 정확하게 읽은 거라면, 스트라이커의 파트너가 출산을 하는데, “new mother”는 이를 의미한다.)
“분노의 작동을 통해, 낙인은 변화하려는 힘의 자원이 된다. Through the operation of rage, the stigma itself becomes the source of transformative power.”(249)
이런 글을 읽으며 시위하는 상황이 더 힘나고 즐거웠다. 다들, 힘내요!
시위 방식이 창의적인데요! ㅋㅋㅋ 주목률이 꽤 높았겠어요~
그쵸? 흐흐흐.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멋져서 배울 점이 무척 많아요.
루인님, 멀리서 지켜보면서 많이 힘이 됩니다. 추운데 따뜻하게 옷 챙겨입으세요.
H님도 기운 내세요!!
‘내 살의 형상은…(생략)’ 와우 정말 와닿아요!
그쵸그쵸? 1인 시위를 하다가 그 문장을 읽곤, 어찌나 몸에 와닿던지, 방방 뛰기까지 했어요. 흐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