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국의 “길”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망나니 삼촌의 죽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 내용의 소설.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해선 행패를 부리고, 친척들에게서 돈을 뜯어 가는 등의 행동으로 부계혈연친족들에게서 외면당했던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가는 이야기였던가. 이 소설을 잊지 못 하고 있다. 무려 10년 전에 읽은 이 소설. 10년도 더 지난 전상국의 다른 소설 “우상의 눈물”처럼, 이 소설을 잊지 못 한다. 1998년 겨울,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소설이 남 얘기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추 한 달 전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러며 “길”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삼촌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위독하다고.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와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소식에 조금도 안 놀랬고, 걱정도 거의 안 했다. 어떻게 되어도 마찬가지란 몸이었다.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 삼촌(다른 집안에선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루인의 부산집에선 꼭 “삼촌”이라고 표현했다)은 그 소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루인의 아빠님에게 해마다 정기적으로 돈을 뜯어가고, 어느 날 새벽 불쑥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전화를 걸어선 돈을 안 준다고 엄마님에게 입에 담지도 못 할 욕을 하고. 아빠님은 그래도 동생이라는 이유로(삼촌은 남매의 막내이기도 했다) 참는다고 하지만, 아빠님을 매개로 만나야 하는 다른 사람들은 또 무슨 죄랴, 싶기도 했다.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에 이혼한 숙모에게서도 해마다 정기적으로 돈을 뜯어갔다(이혼했지만, 여전히 “숙모”로 부른다). 결혼 시기 동안 숙모를 그토록 괴롭힌 것도 모자라 해마다 정기적으로 돈을 뜯어간 사람. 이들이 이혼할 수 있는 건 순전히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공이 크다. 1980년대 중반에 일흔 전후의 나이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이니, 선입견으로 보수적인 분이거나 유교전통의 원단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할머니를 철저히 무시했던 태도는, 소위 말하는 “남성우월주의자”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았으리라. 이런 할아버지가 1980년대에 이혼을 얘기했다.
이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이니 숙모 때문에 삼촌의 인생이 꼬였다는 이유로 이혼을 시키고 재혼을 물색하라는 얘기를 했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유는 정반대였다. 할아버지는 삼촌을 “인간이 안 된다”고 평가했고, 삼촌 때문에 숙모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기에,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이혼을 시켜야 했다.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는 거의 유언처럼 루인의 부모님에게 꼭 이혼을 시키라고 말했고, 결국 이혼을 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 “아들”이 있으니 끈을 아주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혼했다고 조용히 사라질 삼촌도 아니었다.
숙모도 놀라운 사람이었다. 이혼을 한 후 몇 년 간은 명절 때 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해마다 (루인의 입장에서의)사촌동생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여러 의미로 반가웠다.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겠다고, 연을 끊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숙모의 등장은 미안함과 놀라움, 반가움의 교차였다. 하지만, 숙모의 입장에선 좀 더 복잡한 속내가 있었으리라. 이런 복잡한 속내엔 부계혈연의 아들(루인의 사촌동생)이 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겠지(엄마님을 매개한 증언이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알 수 없어도, 언젠가 ‘아들 때문에라도 명절에 참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토록 꼴도 보기 싫어하는 삼촌이지만, 그리고 어지간하면 참석하기 마련인 명절에도 안 나타는 삼촌이었지만, 드물게 명절에 나타나면 숙모는 조금은 힘을 받는 것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말을 걸지도 않았고, 평소엔 결코 만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언젠가, “돈은 줄 테니, 자신 앞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이런 상황이니, 삼촌은 언제나 전상국의 소설 “길”과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전화가 왔다. 결국 임종했다는 소식이었다.
(내용은 심각한데) “엄마님” “아빠님”이란 호칭이 귀여워서 살짝 웃었어요 ㅎㅎ
친척 중에는 싫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 것 같은데, 저도 그런 친척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흐흐. 일부러 인터넷 별칭처럼 들리게 하려고 사용하고 있어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