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 이경숙

인수위원장으로 이경숙씨가 유력하단다. 인터넷 댓글은 난리가 났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경숙씨가 인수위원장이 되면 여성가족부 폐지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거다. 여가부를 폐지하기로 하고선 이경숙씨가 웬 말이냐, 란 분위기. 걱정 말아라, 얘들아.

숙명여대에 10년의 역사를 지닌 여성학과가 있다. 아니 있었다. 아니… 있다고 해야 할까, 있었다고 해야 할까. 여성학과 10주년 기념행사까지 했지만, 학교에선 학과 폐지를 통고했다고 한다. 이에 숙대 여성학과(와 존속을 지지하는 타대학 여성학과, 여성단체, 개인들)에서 상당한 항의와 문제제기를 했지만, 이미 학교 측에서 결정한 사항을 학과에 통보한 것이라, 내용이 번복될 리 만무했다. 기존의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여성학과를 유지하되 신입생은 더 이상 받지 않고 있단다.

“수요가 없다” 혹은 “돈이 안 된다”는 논리.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는 CEO총장들 속에서, 대학의 논리는 이제 “돈”이다. “학문의 전당”이란 고리타분한 명분 따위 집어 치운지 오래고, 대학은 돈을 버는 곳, 취직을 장려하는 곳으로 변한지 오래다. 숙대 여성학과의 폐지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고, 여파인지, 명분을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학교의 여성학과도 없어질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있다. 루인이 다니는 학교의 대학원장은, “협동과정을 만든 게 잘못이다”라고 말하며, 은근히 폐지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 루인이 다니는 학교의 여성학협동과정도 불안한 상황이다. 하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국문과나 철학과도 없애는 추세인데, 여성학과 없애는 걸 대수로 여기겠느냐 만은.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니기 때문에, 학문의 발전이니, 학교의 명분이니, 하는 논리로 폐지를 반대하는 건, 이제 불가능한 시대다. 아니,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었던 시절이 있긴 했는지. 대학설립 자체가 이미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이었고, 산업자본의 발달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는지. 이런 수단을 “학문의 전당”이니 하는 식의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란 명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폐지를 반대할 수 있는 논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아무려나, 이숙경씨가 인수위원장이 되면, “최초의 여성 인수위원장”이라는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명박당선자는 이걸 노리고 있고, 이에 따른 효과를 바라는 면이 있단다. 짜증난다. 여러 가지로 짜증난다.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 역시, 양가적인 효과가 있지만, 너무도 자주 짜증을 유발한다. 동시에 “여성 인수위원장”이란 타이틀이, 여성가족부를 더욱더 쉽게 폐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왜 모르는지. 이명박당선자나 한나라당은, 어쩌면 이걸 노리는 건지도 모른다.

향후 5년의 상황이 그려진다.

8 thoughts on “심란: 이경숙

    1. 숙대만의 상황인 건 아니잖아요. 계속해서 CEO 총장들에, 부피 성장 만을 얘기하니, 속상해요. ㅠ

  1. 여기에 코멘트를 달면, 또 저의 무식이 마구 드러나겠지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고 그랬단 말예요?;; 무슨 근거로 그런 걸 폐지하자는 말이 나온다죠;; 네이버 가면 뭐라도 나올까 싶어서 ‘여성가족부’라고 검색했다가 여성우월주의네 역차별이네 무슨 말도 안 되는 글들을 보게 되어 속 뒤집혀서 그냥 창 닫았어요 -_-;;

    1. 아, 여성가족부와 복지부를 없애고 가족복지부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행정조직 개선안이 몇 가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모두가 여성가족부는 없애는 방향이고요. 참… 답답함만 밀려와요.

  2. 인수위원회 위원장 여자로 앉혀 놓은 거 보고 저도 모르게 그 속내가 보여서 혀를 끌끌 찼다는.. -.-

  3. ‘국보위’ 출신이라더군요. 그때의 경험이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아….-_-

    대학에 대한 생각이.
    학문에 대한 믿음이.
    총장,교수,학생 할 것 없이 하나로 엮어가고 있는 현실이 슬퍼요…

    1. 허억… 정말요?
      마지못해 들어갔다란 식으로 변명을 한 걸로 알았는데, “좋았다”니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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