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기획을 둘러싼 고민

지렁이 2008년도 사업을 쉼터라고 했을 때, 사업을 정할 때는 좋았지만, 막상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선 결코 좋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래서 [Run To 루인]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개한 건, 어떻게든 하겠다는 의지표현이겠지.

사람들이 하리수를 매개해서 트랜스젠더는 “아, 하리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이번 사업은 의외로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쉼터 사업이 어렵고도 난항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많은 운동이 자신의 경험이나 자기 고민과 밀접하다면, 쉼터와 관련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호르몬투여와 수술을 경험하고 호적상의 성별도 변경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의 결은 전혀 달랐을 테다. 하긴, 이런 일련의 경험들을 모든 트랜스젠더가 원한다면 별 막힘없이 할 수 있는 정도의 분위기라면, 다른 계획을 구상했거나 운동의 성격 자체가 달랐겠지만.

만약 호르몬투여를 전혀 안 한(‘당연히’ 호적상의 성별이 바뀌지 않은) 트랜스젠더라면 어떻게 할까? 호르몬투여를 전혀 하지 않아 상당히 빈번하게 “남성”으로 통하지만 자신은 mtf/트랜스여성이라고 얘기하는 이가 쉼터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고 하자. “여성” 혹은 주민등록번호 상의 2번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입소할 수 있을까? 제도적인 판결(인권위? 법원?)을 통해 가능하다고 해서 직원들이 아무렇지 않게 대할까? 같은 방을 사용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만약 샤워장이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단체가 동시에 들어가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호르몬투여를 전혀 하지 않은 ftm/트랜스남성이라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남성” 혹은 1번의 건물/방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까? 지낼 수 있다고 해서 과연 편할까?

호르몬을 어느 정도했다고 해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외부성기수술을 하지 않은 mtf라면? 호적상의 성별은 바꿨지만 외부성기수술은 하지 않은 ftm이라면? 현재의 몸 상황에 비추어 어느 방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쉼터가 단체샤워장이기라도 하다면?

모든 트랜스젠더가 이성애자인 건 아니란 점에서 레즈비언 mtf거나 게이 트랜스남성이라면? 바이(bisexual)라면?

행여나 일이 어떻게 풀려, 트랜스젠더는 자신이 원하는 방에 들어갈 수 있다고 치자. 이럴 때 같은 방이나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설득하거나 어떤 설명이 필요할 텐데, 같이 사용할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혼자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상상하다가 부아가 슬쩍 치미는 건, 왜 “커밍아웃”/”아웃팅”(이 순간 “커밍아웃”과 “아웃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만이 이런 상황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커밍아웃”/”아웃팅”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을 사용할 수는 없는 걸까? 왜 “커밍아웃”/”아웃팅”이 권리와 당연한 요구를 주장할 수 있는 핵심적인(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걸까? 근데 “트랜스젠더”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괜히 혼자 이런 상상에 빈정 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젠더이분법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가해자-“남성”, 피해자-“여성”이라는 성폭력의 ‘현실'(‘설명’)과 충돌/경합할 수도 있다. “이성애 남성인데 트랜스젠더라고 거짓말하고 여성 방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 자칫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건 차후의 문제라고, 형사법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듣는 입장에선 트랜스혐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트랜스혐오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한다고 간단하게 단언할 수는 없다. 이렇게 단언해서도 안 되고. 아울러, 트랜스젠더와 비이성애 실천에 상당한 혐오와 ‘편견’이 있는 이 땅에서, 호르몬 투여와 수술을 전혀 하지 않은 레즈비언 mtf 트랜스젠더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원하는 대답은 있다. 상상으로는 간단하다. 독방. 혼자서 방을 사용하는 것. 이건 나 자신의 바람이기도 하다. 누구와도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에서기도 하다. 하지만, 들리는 바에 따르면 쉼터 치고 각자의 방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없고 여러 명이서 하나의 방을 사용해야 한다는데 독방을 요구할 수 있을까? 다른 한 편,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방을 함께 사용하고 싶은데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독방을 배정하는 것도 문제다. 제도적으로 “트랜스젠더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방을 배정한다.”라는 구절이라도 만들까? 타협의 방식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구절은 코미디이고, 이런 구절로 인해 어떤 역풍이 불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것이 코미디라도 좋으니 이런 구절이 있기라도 하면 뭔가를 해보겠는데 이마저도 없고, 생길 가능성도 없을 거 같다. 가능성이 있다면 다른 식을 모색하겠지.

이런 고민들 속에서, 솔직히 어떻게 협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만 원 없이 있으면 차라리 건물을 짓고 말지, 싶다. 하긴 돈이 있으면 이런 고민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 현재의 사회제도적인 상황에서 호르몬투여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은 어느 쉼터를 이용할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 ‘답’ 이 없다.

그나저나 기존의 쉼터에서 LGBTQ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하는 미국의 Queers For Economic Justice란 단체의 홈페이지는… 암울하다. -_-;; 관련 자료가 있다고 해서 찾으려고 하니, 도메인 만료인데 연장을 안 했는지 엉뚱한 페이지만 뜬다.

6 thoughts on “쉼터 기획을 둘러싼 고민

  1. 2008년 사업이 쉼터인게 흥미롭네요 / 혹시 필요하시면 이글럭 쪽에 그 단체에 대해서 물어볼까요 관계자 이메일이라도 알면 어떻게 자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리 이히히

    1. 우왓,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너무너무 고마운 걸요!!! 헤헤.
      메일 주소는 한 번 찾아 볼 게요.

  2. 미국에 lgbtq youth를 위한 쉼터가 6개가 있고 모두 공동사용인 것 같아요. 그 중에 유명한 게 Ruth Ellis Center인데 역사가 오래 되었어요. 쉼터, TLP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물보라 백서가 나오면 관련 내용이 담길지도 모르겠어요.
    http://www.ruthelliscenter.com/ruthshouse/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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