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 [색맹의 섬](이민아 옮김, 이마고, 2007)

2년 전, 이맘 쯤이었을까? 한창 본다는 것, 시각경험, 색맹/색약과 관련한 글을 [Run To 루인]에 쓰곤 했다. 그리고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이와 관련한 글을 쓰려고 한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별로 그렇진 않다.

가끔씩은 정말로 타고난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타고난 경험이라서, 반드시 ‘구성’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타고난 조건을 경험하지 않는 이들과는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경험. 이 말이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질주의와 구성주의라는 이분법으로 나뉜 논쟁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 아울러,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거 같아”라는 진술이 본질주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일테면 나의 시각경험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유전적 경험인데, 이것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 사회에 살고 있느냐가 관건 이겠지. 대체로 한국이란 사회는 이런 경험에는 완전 무지하거나 거의 무관심인 듯 하다. 이 책의 저자와 여행에 동행한 크누트의 경험이 그러하듯, 색맹/색약이란 경험은 한국에서 확실히 낯설고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리하여 내가 “색약”이라고 밝히는 건, 다른 여러 상황들과 마찬가지로 피곤한 일이다.

색약과 색맹은 상당히 다른 경험이고, 색약도 종류가 다양하다고 알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색약이 뭐냐고 묻는 이들도 많다. 나의 경우, 세상을 “칼라”로 해석하지만, 개개의 색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인식하진 않는다. 색이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색이 다르구나” 이상의 인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색깔 경험이 전무 하거나 아예 못 하는 것처럼 대하는 반응을 접하면, 분기탱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미세한 경험을 무시하는 반응인 동시에, 시각경험을 고민하지 않는 반응에 화가 난 것이랄까.

이런 경험이 있기에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꽤나 매력적인 글쓰기를 하는 올리버 색스의 글이니 더욱더. 하지만 이전의 글에서 보여주는 색스의 한계는 이 글에서도 여전하다.

나는 크누트가, 우리 주위의 색맹들이, 마블의 시상 같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지 못 한다는 사실이 문득 슬퍼졌다. (113)

예전에 읽은 색스의 책([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사내],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색스는 다분히 정상적인 경험과 그렇지 않은, 그래서 결여된 어떤 경험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색스는 나와 같은 시각경험을 결코 하지 못 한다는 점에서, 슬프다는 식의 표현은 웃긴 감상일 뿐이다.

이 책은, 색맹과 관련한 “1부 색맹의 섬”과 리티코-보딕(lytico-bodic)과 관련한 “2부 소철 섬”으로 나눠져 있다. 하지만 “색맹의 섬”은 기대한 것보다는 별로 였다. 2부가 기존의 논쟁까지 아우르며 리티코-보딕과 관련한 논쟁을 어느 정도 꼼꼼하게 다루면서 섬의 풍경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면, 1부는 다소 풍경과 식물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기대한 1부보다는 2부가 훨씬 재밌다.

[#M_ 심심하시면.. | 한 번 해보세요.. 훗.. |
_M#]

8 thoughts on “[색맹의 섬]

  1. 책 추천, 감사합니다! 이번 설에 나이에 맞지 않게도 학생 신분이라, 세뱃돈과 도서상품권을 무더기로 얻었어요~ 그래서 어떤 책을 살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좋은 책 정보…+ㅁ+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2. 심심하시면.. 을 눌러서 해봤더니 저는 다분히 정상이네요.
    그러고보면 어릴 적에 학교에서 하는 색맹검사 같은 거 할 때 상당히 무서웠어요. 혹시 내 눈이 이상해서 저기 있는 글씨들을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하고 지레 겁먹고 발동동. ㅋㅋ

    1. 전 못 알아 본 글씨들이 많아서, 검사했던 쌤이랑 저랑 서로가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흐흐.

  3. 크누트! 반가운 이름. ㅋ
    반면 ‘색스’란 이름 참 난감하네요. ㅋㅋ

    1. 크크크.
      그렇잖아도 책의 표지를 보고 사람들이 “색스”란 이름에 유난스런 반응을 하더라고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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