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 ‘도코노 이야기’ 세 편

01
학교 네트워크 관련 팀에서 문제를 일으켜 연구실 컴퓨터에선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 지난주 월요일부터 안 되었으니, 일주일 내내 연구실에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주로 연구실 컴퓨터로 블로깅을 비롯한 인터넷을 했으니, 덕분에 인터넷 사용 시간은 줄었다. 대신 책은 여유있게 읽었다.

02
온다 리쿠의 ‘도코노 이야기’ 연작 3권([빛의 제국], [민들레 공책], [엔드 게임])을 읽으면서, 마지막 권에선 살짝 소름 돋았다.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나로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구성.

굳이 세 권을 연작으로 부를 필요는 없는데,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란 점에서만 연작일 뿐, 각각은 다른 얘기이다. [빛의 제국]은 10편의 단편들을 모은 것.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은 듯 한데, 온다 리쿠는 확실히 장편에서 빛을 발한다. [민들레 공책]은 살짝 통속적인 스토리인데 이런 통속적인 스토리도 괜찮지만, 시간 구성이 흥미롭다. [엔드 게임]은 단연 압권. 자칫 줄거리를 쓰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불안이나 어떤 문장, 그래서 쉽게 잊을 수 있는 일들을 포착해서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 작품 역시 시간 구성이 흥미롭다.

온다 리쿠의 시간은, 특히나 이번 작품들에선, 결코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에서 미래로, 혹은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과 만나고, 미래의 시간을 과거에 만나고, 미래보다 과거가 더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세계. [엔드 게임]에서 이런 시간 구성이 특히 두드러지고, 이런 시간 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이런 활용은 단순히 판타지 요소가 있어서는 아닌 듯 하다). 얼룩덜룩해서 농도가 다른 기억들, 그래서 어떤 기억은 확실한 듯 하고, 어떤 기억은 불확실하고, 어떤 기억은 의도적인 삭제를 통해 전혀 떠오르지 않고. 이런 기억들이 엉키면서 시간은 다시 한 번 엉킨다.
(쓰고 다시 읽으니, 책을 읽어야지만 알 수 있을 내용이다-_-;;;)

03
오랜 만에 여이연 강좌를 들으러 갈 지도 모르겠다. 🙂

4 thoughts on “온다 리쿠, ‘도코노 이야기’ 세 편

  1. 도코노 일족을 탄생(?)시킴으로써 이야기의 소재가 무궁무진해진 거 같아요. (한 권 읽었지만) 아주 깊은 슬픔, 본성을 건드리는 글이란 느낌이에요.

    1. 맞아요. 그래서 온다 리쿠의 글이 무척 좋아요. 헤헤. 특히 [민들레 공책]의 후반부는 자꾸만 눈물이 나서 간신히 읽었어요. 흐흐.
      개인적으론 [빛의 제국]에 실린 단편들을 모두 장편으로 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온다 리쿠는 장편에서 빛을 발한다고 적었어요. 흐흐

    1. 정신연령을 얘기하시니, 예전에 한 사이트에서 생후 6개월까지 나온 적이 있어요. 흐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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