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집]: 관계를 엮어가는 과정

[재미난 집: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 앨리슨 벡델 글, 그림. 김인숙 옮김. 서울: 글논그림밭, 2008

01
장의사인 아버지가 죽었다. 그럼 누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아버지가 죽었지만, 슬프지도 않다. 가족들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분명하게 말한다. 슬퍼하지 않았고, 그저 몇 가지 일로 짜증이 좀 났을 뿐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겐 너무 아무렇지 않게, 혹은 웃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말해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는 애매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던 아버지가 트럭에 치어 죽었다. 트럭기사는 아버지가 트럭을 무사히 피해갔다가 갑자기 뒷걸음질을 쳤다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새롭게 닥친 재앙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아주 천천히 전개되어 왔던 해묵은 재앙이었다.”(97쪽)

거의 말도 없었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 관계. 그래서 죽음이 무덤덤한 관계. 그런 아버지와의 추억과 관계를 떠올리며 아버지를 복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만화가 “아빠 힘내세요.”와 같은 부권의 회복은 아니다. 그런 책이었다면 읽지도 않았겠지. 존재감이 없다고 믿었던 아버지와 자신의 공통점과 연결지점을 깨달으며 죽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책이다.

죽음을 계기로 관계를 회복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친했거나 친밀감을 느꼈던 일은 없다고 기억했다. 다만, 아버지가 죽은 후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사실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자기 옆에 있었음을 깨달았을 뿐.

02
“저 레즈비언이에요.”라고 주인공이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을 때, 아버지는 다양한 경험도 필요하다는 식의 답장을 했다. 엄마는 뭔가 충격을 받은 것 같지만 별 다른 얘기는 없었다. 부모님의 엄청난 반응을 예상했는데. 하지만 며칠 뒤, 아버지가 농장 일을 도와주는 남자와 바람났다는 말을 전하는 어머니의 소식을 통해, 자신의 커밍아웃은 묻혀버린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자신과 관련해서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아버지의 커밍아웃을 접한 셈이다. 그것도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고등학교 영문학 교사인 아버지와 자신이 공유한 저서들을 통해 유추하며.

카뮈,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고, 이 작가들의 동성애 경험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들 작품을 통해 자신과 아버지의 역사를 탐구하는 동시에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이 책은, 빼어난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03
아버지가 한 남성과 바람났다고 해서, 아버지가 뒤늦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달은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났고,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이 말이 아버지가 게이란 의미는 아니다.

“어렸을 때 난… 정말 여자가 되고 싶었다.”(235쪽)는 아버지의 고백처럼, 아버지의 정체성 중 하나를 게이나 동성애자로 단언하는 건 쉽지 않다. 이성애자 mtf/트랜스여성일 수도 있고, 게이일 수도 있다. 혹은 이런 식의 구분 자체가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버지는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거나, 커밍아웃을 할 만한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성애-동성애, 게이-mtf/트랜스여성과 같은 구분은 너무도 임의적이라서 개인의 경험을 충분히 살릴 수가 없다. (1950년대 즈음으로 추측할 수 있는) 아버지가 젊었을 당시 미국의 맥락에서 동성애 혹은 비이성애적 관계는 불법이었고, 그래서 불심검문과 구속이 가능한 범죄였다. 그러니 제도적 이성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게이였을 수도 있다. 혹은 당시엔 의학적 기술과 정보가 지금보다는 부족했기에, 이성애 mtf/트랜스여성이었는데 수술이나 호르몬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여러 가능성이 있다.

분명한 건, 아버지는 자신의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주인공 역시 이런 상황을 분명하게 분류해서 얘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매력적이고 좋다.

04
이 책에 퀴어한 관계가 등장한다고 해서,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여긴다면 슬플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쓸 때, 이와 관련한 얘기를 뺄까 하는 고민도 했다. 그냥 한 개인의 따뜻한 자서전으로 읽으면 좋을 거 같다. 이젠 죽은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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