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니 약간 불온하고도 삐딱한 심정으로 쓰는 글(개연성은 없는 듯-_-;; 흐흐). 결코 심각하게 쓴 글이 아니라 이런 저런 상상력을 나열한 거.
01
간단하게 말하면, 뭔가 이상하다. CJD(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이른바 광우병) 감염 우려가 있는 소를 수입하겠다는, 먹어도 감염 확률은 현저하게 낮고, 알아서 잘 가려 먹으면 된다는 말들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vCJD(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이른바 인간광우병)의 위험에 이처럼 광풍이 몰아치는 것도 이상하다. 며칠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아고라의 탄핵서명에 서명하여 80만 명이 넘은 것도 이상하고, 어제 촛불집회가 열렸고 오늘도 열릴 거라는 것도 이상하다.
※”광우병”이란 이름이 거슬려서 CJD로 표시함.
처음, 탄핵 아고라 서명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재밌었고, 가능하리라 여기진 않지만 1,000만 명 서명을 성공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 서명이 늘어날수록 좋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뭘까?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광풍처럼 몰아치는 집단행동에 경기를 일으키기 때문일 수도 있고(일테면, 2002년 6월의 붉은 물결은 내게 위협이었다), 정당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불신부터 하고 보는 나의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30개월령 이상인 소를 수입하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할 땐 언제고 이제와 국민들이 잘 모른다고 얘기하는 정당도 이상하고(관련기사 1, 2, 3), 한미FTA를 조속히 체결하자고 주장하던 사람이 미국소 수입은 반대한다는 주장도 이상하다(여기 참고 혹은 여기).
그리고 이 엄청난 광풍(!)은, 한 발 떨어져 구경만 하기에도 이상하기만 하다.
02
몇 해 전, 비가 너무 많이 오던 어느 여름이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졌다느니, 마을이 고립되었다느니 하는 소식들이 라디오 뉴스와 포털 메인을 장식하던 시절이었다. 그 소식에 걱정을 했지만, 그건 그냥 걱정이었다. 그 일이 구체적이고도 심각한 일로 느껴진 건, 과일값이 폭등했을 때였다. 단골가게에서 과일을 사려는 데, 거의 두 배 가격이었나. 그제야 폭우의 위력과 위험을 생생하게 실감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특별할 것 없는 경험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땐 상관하지 않다가, 구체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깨닫고 화를 내는 것. 이런 태도를 문제 삼거나 비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고민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나 자신, 이런 고민과 반성을 잘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니 이런 글은 치졸한 반성문이거나 면피용에 가깝다.
03
그냥 일련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문득 이번 vCJD 사건은, 다름 아니라 육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혼란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소=고기라는 인식, 그리고 아무리 ‘웰빙’이라고 해도 결국 육식이 좋거나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인식, 그런데 이런 고기를 먹는 일이 위험해졌다는 인식이 겹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마 내가 채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심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괜한 어깃장일 수도 있다. 흐흐.
하지만 단순히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를 안 먹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수백 가지의 음식에 쇠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수입자체가 위험하다는 기사를 읽었을 땐, 사실 조금 우습기도 했다. 관련 기사를 접하며 속으로, ‘그걸 이제 알았니?’하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그나마 쇠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은 적은 편이다. 우유 혹은 유제품도 안 먹기에 음식에 들어가는 원재료를 일일이 확인하고 사는데, 우유 혹은 분유가 안 들어가는 가공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불현 듯 궁금한 거. 저의 경우 음식을 살 때마다 원재료를 일일이 다 확인하는데 채식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분들은 어때요? 갑자기 궁금해서;;;)
그런데, 그럼 과연 조미료에 들어가는 쇠고기는 다 국산일까? 문득 궁금했다. 왠지 그런 거 같지는 않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존의 조미료에 들어가는 쇠고기가 미국산이 아니란 보장은 없다. (너무 잔인한 추측인가?) 만약 미국산일 수도 있다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건 하지 않건, 이미 CJD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상태란 걸 의미한다. 지금까지 시중에서 팔고 있는 식재료 중에 쇠고기가 들어갔고, 국산이란 표시가 없었다면 한 번 쯤 의심해봤어야 하지 않나? 근데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이 정도면 며칠을 떠들었을 법 한데.
그렇다면, 만약 CJD가 그토록 문제라면 우유는 안전할까? 방송에서 보여주는 소들은 육류를 위해 키우는 종인 듯하다. 그럼 고기로 만들기 위해 키우는 소들 말고, 젖소들은 CJD에 안전한가? 잘 모르겠다. 우유는 혹은 소의 젖은 프리온과 무관한 건가? 몰라서 질문하는 것임. 위험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해도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을 거 같다. (←이런, 아님 말고 식의 무책임한 말이라닛! ;;)
뭐, 어떤 결론이건 간에, 결코 채식이 대안은 아니지만, 채식이 대안이라해도 나의 입장에선 달라지는 게 별로 없다. 😛 크크. 죽은 소를 비료로 사용해서 채소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선 채식을 한다고 해서 vCJD에 무관할 수 없고,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엔 분명 미국산도 있었다. 그러니 나의 생활 방식이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이미 충분히 CJD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생명에 위협을 받기 때문에 수입을 반대한다는 논리 일색이다(이렇게 인식한다면, 손ㅎㄱ의 발언은 모순이 아닐 것이다). 그럼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수입해도 괜찮다는 의미일까?'(이런 식으로 귀결할 수 없지만) 라고 괜한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건 호주산 쇠고기를 수입하건 소를 키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한미FTA는 찬성하거나 별 말을 안 하다가, 선결조건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엔 이토록 반대하는 논리가, 공감이 안 된다.
04
에이즈를 들먹이며 CJD를 위협하는 인터뷰가 등장했다. 사실 며칠 전에도 한 번 나왔는데 그땐 크게 안 나와서 일부러 무시했다. 제발 조용히 넘어가잔 심정이었달까. (여기) 기사를 읽으면 알겠지만 이것이 비록 은유이자 설명을 위한 근거라고 해도 이런 식의 말들은 은유 이상이다. “에이즈도 3~4명 죽는 것으로 시작했다”와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병이자 가장 많은 낙인이 찍혀 있는 병이 에이즈란 전제가 있기에 가능하다. 아울러 현재의 분위기에서 에이즈와 CJD를 동시에 언급하는 건, 그렇잖아도 HIV/AIDS감염인들을 향한 혐오와 사회적인 낙인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을 향한 공포와 폭력이 더욱더 증가할 것만 같아 불쾌하고도 불쾌하다. 저 교수는 그럴 듯한 비유를 찾았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듣는 나는 섬뜩하다. 그가 한국에서 에이즈가 처해 있는 맥락을 조금이라도 살폈다면 저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기에, 저 교수가 불쾌하다. 그런데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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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CJD(광우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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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노의 핵심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라기보다는 기막힌 정부의 태도와 책임회피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금씩 둑이 무너지듯 수입 농산물들이 많아지고는 있었지만 FTA 비준 이전이라 전면개방의 측면은 아니니까 심정적으로 막연히 먼 남의 일 같이 여겼는데, 이미 수입되다가 광우병 논란으로 중단된 쇠고기를 아무 조건없이 확 들이대니 분노하는 거겠죠. 작년에 미국 쇠고기 들여왔을때 너도나도 많이들 사먹었잖아요. 싸다고.. 근데 광우병을 차단할 방패막이 사라져 그걸 못하게 됐는데, 머리 나쁜 명바기 일당은 계속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말만 해대서 단순한 육식주의자(모유 대신 소젖을 먹고들 자라서 다들 걸핏하면 치받는 성향이 있다지요 -_-;;)들이 불끈 화를 내는 게 아닐까 합니다. 어휴..
정부의 기막힌 태도도 정말 큰 몫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이제 2개월 남짓 지났는데, 정부에서 발표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잖아요. -_-;; 어제 한다고 한 일을, 내일이면 안 한다고 발뼘하는 걸 만날 접하고 있자니, 이젠 뭔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정말 이런 태도와 책임회피가 부채질을 한다는 걸, 아직도 모른다는 게 이젠 신기할 따름이고요.;;
참 재밌어요. 정말 반대하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수입하자고 하고, 들여오자던 사람들이 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ㅋ
그러니까요. 정말 이젠 믿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갑갑하기도 해요.
“그러니 단순히 “음식”이 위협받아서가 아니라 육류 혹은 고기가 위협받아서 이렇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
아..
‘채식’을 하시는 루인 님의 관점에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고, 식문화의 총체적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의미있는 질문이에요.+_+
모든 “음식”에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음식”에만 반응한다는 점이 재밌는 것 같기도 해요.
아울러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입장만큼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입장에도 쉽게 동조할 수가 없어, 촛불시위가 조금 껄끄럽기도 해요. 흐
음식..새로운 걸 시도해볼때는 저도 원재료 확인해요.
그치만, 항상 먹던 걸 먹기 때문에 거의 확인안하죠.
소고기 문제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난 어차피 소고기 잘 안먹으니까 괜찮아.’ 이랬는데, 알고보면 소고기 안 들어간 음식 찾기 힘들더군요.
몰랐는데 항상 먹던 음식에도 원재료가 바뀌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전까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어느 날 원재료가 바뀌어 못 먹는 경우도 있어서, 이젠 익숙한 음식도 매번 원재료를 확인하고 있어요. ㅠㅠ
에이즈와 비교하는 건 잠복기가 긴 전염병이기 때문으로 당연한 걸로 보여요. 수명이라도 잠복기가 끝나면 수천만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거고 지금 이명박이 하는 짓은 쓰고 나면 에이즈가 걸리는 -_-;;콘돔을 수입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아무튼 에이즈 환자들의 사회적 대우까지 고려하기에는 발등의 불이 ㅋㅋㅋ 딱히 그런 사실 지적으로 에이즈 환자를 더 비난하게 될리도 없다고 봐요.
저런 식의 비유가 끊임없이 질병의 위계를 만들고, 은유로서 혐오를 만들어서 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