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자주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이유가 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소위 말하는 공학이다(지금도 공학인지는 모르겠다). 사복이었고(교복으로 바뀌었다는 얘길 얼핏 들었다). 초등학교와는 같은 동네에 있었다. 초등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기에 새로운 얼굴은 별로 없는, 이미 익숙한 얼굴이 대부분인 곳이었다. 오지랖만 넓으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이미 전교생을 알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까, 3학년 때였을까. 아마 중3 때이지 않았을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떤 소문이 돌았다. 아니다. 소문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한 말이 돌고 돌았다. 그리고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그 얘길 전해 들었다. 꽤나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는데. 지금이라면 다들 쉬쉬하려나? 그때니까 가능한 거였을까?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공연히 말하고 쉬쉬하는 건 마찬가지다. 말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동급생 중 한 명이, 자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소위 말하는 남성호르몬을 맞을 거라는 얘길 했다는 소식. 그 얘길 같은 반 아이들에게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닌다는 소식. 그 동급생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짝지였으니까. 전혀 안 친했기에 누군지 모를 수도 있었는데, 그 얘길 듣는 순간, 누군지 깨달았다.
그 일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일이 떠올랐다. 이건 활동이 촉매로 작용한 걸까? 나의 상황이 촉매로 작용한 걸까? 하지만 그 일이 떠오른 건 기껏해야 1년 전이다.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매료되었을까, 당황했을까, 놀랐을까. 아님 무서웠을까? 이제와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말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은 방식으로 떠올릴 테니. 다만, 기묘한 느낌이었고, 나 혼자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은 선명하다. 이것이 기원론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우스개로 반응했다. 난 그저 궁금했던 거 같다. 호르몬을 투여하면 몸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희화화했을 때, 불쾌했지만 이런 불쾌함이 그때부터 내가 나를 트랜스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럴 리가.
지금은, 그 시절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았을까가 궁금하다. 호르몬을 투여하면 몸이 변한다는 걸, 중학생의 나이에, 인터넷이 거의 없던, 통신을 하기엔 집이 가난하다고 알고 있는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살아갈까? 호르몬 투여를 하고 살아갈까? 아님 많은 고민 끝에 연기했을까?
그 시절 알고 지냈던 이들 중, 지금의 내게 연락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듯, 나 역시 그를 찾을 의사가 없다. 그래서 그냥 가끔 떠올릴 뿐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정도의 궁금함과 함께.
아, 저는 버틀러 강의를 들을까 싶어요^^
저도 그거 들으려고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월요일 저녁에 프로젝트 회의가…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글의 내용과 다르게.. 좀 댓글이 생뚱맞네요 쓰고 보니-_- (또 못 지우는 상황)
방명록이 없으니, 생뚱맞은 느낌이 별로 안 들어요. 흐
음.. 제가 중학생때도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화교학교냐는 질문을 들을 만큼 드물게 저희 학교는 추운겨울엔 바지 교복도 입을 수 있었는데, 저와 그 친구는 11월부터 2월까지 선생님들한테 혼나기 전까진 죽어라 바지만 입었더랬죠.
저는 치마가 싫고 추워서, 그 친구는 그냥 치마가 싫어서.
그 친구도 공공연히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다녔고(집에 만화책이랑 잡지책이 참 많았어요!), 학교에선 초절정 인기를 누렸지요. 예쁜 아이들이 서로 그애랑 손잡고 다니려고 막 싸우고;;;
저는 당연히 그 친구의 삶이 변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는데 말이죠…
몇년 전에 그 친구가 결혼해서 아이낳고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있다는 소식에 막 배신감과 실망을 느꼈답니다. 내막도 잘 모르면서 말이에요. 차라리 그 뒷소식을 모르는 게 나았을 것도 같아요.
아, 그러고 보면 예전엔 그런 이들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요즘은 이반으로 배척해요. 학교 선생들이 노골적으로 배척해서 수업에 못 들어 가게도 하고요. -_-;
전, 그렇게 변했을 때 어떤 고민이 있을까가 궁금해요. 흐. 전공이나 관심이 관심인지라.. 흐 ;; 결혼하고 살면서도 여전히 갈등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하지만 주변에서 가끔 만나는 입장에선 (아마 저라도) 아쉬울 거 같아요. 🙂
오,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라니언니 친구 얘기는 놀라운데요? 중고등학교 때 남자처럼 하고 다니다가 나중에 여자로 변신(?)하는 경우는 저도 많이 봤지만, 호르몬을 맞을 거라는 얘기까지 할 정도의 사람이 바뀐다는 건 신기하네요. 제 친구 중에도 고등학교 때 남자같이 하고 다녀서 여자애들에게 인기 많았던 애가 있는데, 걔는(지금은 기혼) 나중에 얘기하길 그때도 여자애들이 그러는 게 이상했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많이 변하니까, 어릴 때와 나이 들어서 어떻게 변했는지는 정말 알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 주면 좋을 텐데, 요즘 학교의 많은 부분은 선택할 수 없게만 하니, 답답해요..
그 시절에 호르몬 주사라는 구체적인 방안에 착안할 수 있었던 중학생이 존재했다니 놀라워요 +_+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지만, 종종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만큼 전후의 일들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지 못해서 어쩌면 그냥 모르고 지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
그러니까요. 저도 그땐 몰랐는데, 최근 그 기억이 떠오르며 좀 놀랐어요.
그러게요. 그냥 모르고 지내는 게 차라리, 제가 더 행복해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