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어폰을 끼고, 음악 소리를 높여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다 차단해도 돌아다닐 수 있어. 좀 불편하지만 물건을 살 때도 문제가 되진 않아. 하지만 난 눈을 가리고 돌아다닐 수는 없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돌아다니던 어느 날 했던 상상. 만약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면, 어떤 장치를 이용해 영화를 보면서 거리를 돌아다닐 순 있을까? 영화 같은 데 보면, 눈에 안경도 아닌 것이, 좀 이상한 걸 쓰면 아예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영상이 펼쳐지는 기기가 있잖아. 그런 것처럼, 그런 기기를 쓰고 영화를 보면서 거리를 돌아다닐 순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서 난 내가 얼마나 시각경험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어.
물론 난 처음부터 길에서 음악을 들으며 돌아다닌 것에 익숙하진 않았겠지. 하긴. 지금도 뭔가를 주문해야 할 때,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해야 할 때면 지지(mp3p)를 꺼. 상대방의 소리를 듣지 않았을 때,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불안하거든. 하지만 지지를 끄지 않고 음악을 계속 듣고 있다고 해서 일처리를 못 하는 건 아냐. 단적으로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거의 항상 음악을 듣는 걸.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영상을 보면서 다른 무언가를 하긴 힘들어. 이건 내가 얼마나 시각경험에 의존하고 있는지, 나의 생활에서 시각경험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어. 아울러 사회가 얼마나 시각경험을 가장 기본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럼 만약에, 시각경험이 아닌 청각경험을 가장 기본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어떤 곳일까? 그런 곳이라면 난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는 거리를 돌아다닐 순 있어도, 음악을 들으면서 돌아다닐 순 없겠지. 근데 그런 곳은 어떤 곳일까. 청각을 기본적인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청각을 기본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세상.
아마 지금과 같은 방식의 색채로 이루어지진 않겠지. 대신 거리엔 더욱더 다양한 소리가 넘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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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 글은 구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워드프로그램인 StarSuite8로 썼어요. 제가 비록 기계치지만, 뭔가 새로운 걸 사용하는 건 좋아하는 거 같아요. 흐
악기 칠때라 그런지 바람소리에서 연습할때는 시각보단 청각적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기도 해요. 그래도 직접 내 눈앞에서 누군가가 악기를 치면서 가르쳐 줄때는 말이죠, 신기하게도 보기만 하지도, 듣기만 하지도 않아요. 흡수하듯 순간적으로 가락을 쭉 빨아들이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배운 직후엔 곧잘 따라해도 하루만 지나면 느낌이 가물가물해지곤 해요. ㅎㅎ
악기를 배울 땐, 정말 어느 하나의 감각으론 힘든 거 같아요. 예전에 누가 기타를 연주하는 걸 옆에서 구경한 적이 있는데, 정말 오감이 살아나더라고요. 흐흐.
그나저나 정말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으셔서, 무척 부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