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고정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내게 익숙한 공간, 낯선 공간은 물론, 시간에 따라 그날 기분에 따라서도 공간은 달라진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퀴어하게 변하는 걸 쓰고 싶었다. 쓰지 못 했다는 의미다. 성별이분법이 분명한 공간을 퀴어하게 바꾼다는 게 아니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나로 인해 퀴어하게 비틀린다는 걸 쓰고 싶었다. 이런 오만한 인식이라니. 하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결국 ‘나’ 아니던가.
내겐 내공이 부족했다. 전혀 무관한 것 같은 두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한없이 태만한 글을 보냈다. 부끄러운 일이다.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지난 월요일, 죽음을 애도하러 가기 전에, “젠더 스펙트럼”이란 전시에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왜 그런 경우가 있잖아. 너무 가고 싶은데, 자꾸만 망설이고 미루게 되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그곳에 전시한 작품 중에 나도 살짝 관련있는 작품도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흐. 하지만 가길 잘 했다. 많은 고민과 위로를 얻었다.
(성별)이분법으로 수렴할 수 없는 경험을 설명하는 방법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운동을 하며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이런 믿음이 단단한 건 아니다. 때로, 나의 고민들이 상아탑에서 하는 탁상공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소위 말하는 현실과는 무관한, 이론놀이에 빠지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다른 한 편으론 이미 남들 다 아는 이야기, 뒷북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모든 이론은 현실을 쫒아가기 바쁘다. 이론은 나의 살이지만, 또한 이론은 삶을 설명하기에 너무 뒤쳐져있다. 탁상공론이란 염려, 나의 오만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고민에 내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쓸모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란 점에서, 전시회에 잘 갔다고 느꼈다. 너무 고마웠다.
저도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도 하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 놓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그래서 저도 사람들에게 고마웠어요
참, 전시장에서 만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도록 나오면 날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그렇게 느끼셨다니 저로썬 다행이네요
도록 기대하고 있을 게요.
이렇게 위로와 공감이 가능한 전시가 있어서 참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