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강사와 수강생, 권력

01
일테면 여이연에서 했던 강의를 떠올려 봐. 나는 어쨌거나 강사로서의 위치를 점해. 그 강좌가 비록 서로의 앎을 나누는 자리라고 해도, 기본적으론 강사로서의 위치야. 그 누군가는 강사로서의 나의 위치를 기대하고 올 테고. 나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해. 그리고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은 수강생으로서의 위치를 점해. 그리하여 서로의 역할에 대체로 충실해. 내용이 재밌건 재미없건 강사와 수강생의 역할에 대체로 충실하기 마련. 나는 얘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수강생은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내가 하는 얘기가 재미없고 완전 헛소리만 해도, 그 시간 동안 듣는 척은 해. 지루한 표정에 몸을 꼴 때도 자리에 앉아 있긴 해. 갑자기 자기 혼자 소리를 지르거나 하진 않지. 혹은 여이연 강좌와 같은 자리가 아니라면, 그냥 가방을 챙겨 나가면 그만. 난 이런 강의에 무척 익숙해. 내가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도 대체로 이래. 종종 강사의 얘기에 나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일단 들을 준비는 하고 있어.

‘그래, 한 번 얘기해봐. 들어 줄 테니. 얼마나 잘 하는지 한 번 보자.’라는 태도라도 상관없어. 강사와 수강생 사이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권력관계야. (권력관계가 곧 위계관계는 아니고.) 강사는 지금까지의 제도권 교육을 통해 체화하고 있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수업을 진행할 권력이 있음을 알지. 수강생 역시 몸에 밴 방식이 있기에 강사에게 권력을 부여해. 강사와 수강생의 권력관계는 강사에게 일방적으로 있지 않아. 서로가 서로에게 권력을 부여해주는 방식이지. 수강생은 일단, 자신의 시간을 통제할 권력을 강사에게 부여하고 강사는 자신에게 그런 권력이 부여되어 있음을 알아. 강사는 수강생들이 어쨌거나 자신의 얘기를 들을 준비를 할 거란 걸 믿고 있어. 수강생은 강사가 어쨌거나 수업이나 강좌를 위해 준비한 얘기를 할 거란 걸 믿고 있어. 그리하여 자신의 믿음에 부합할 정도의 지적 쾌락을 줄 거란 걸 믿고, 이런 믿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해. 강사와 수강생, 선생과 학생 사이의 권력관계는 상호협력일 때만 가능해.

이런 상호협력은 각자의 위치가 어떤 의미인지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용인해. 나는 이제까지 이런 권력 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의만 들었지. 때로 자신들이 편안한 자세로 수업을 듣는다고 해도, 이런 권력관계는 유지하는 형태였지. 하지만 수강생이 강사의 권력과 의미를 무시한다면? 혹은 수강생-강사의 위치가 지니는 의미를 동일한 방식으로 공유하지 않는다면?

강사의 권력행사, 통제, 그리고 규제에만 익숙한 수업 공간이 아닐 때, 내가 얼마나 당황하는지 깨달았어. 모든 권력은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야. 의미를 동일한 방식 혹은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공유할 때에만 권력이 발생해. 내가 얼마나 권력통제에 익숙한지, 의미를 공유하는 집단에 익숙한지 깨닫지 않을 수 없었어.

더 쉽게 말하면 나는 그곳에 갈 때, 나를 강사의 위치로 설정하고 준비했다는 뜻이야.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성”교육”이고,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사란 용어를 쓰다 보니, 별다른 고민 없이 내가 “강사”라고 믿었어. 오, 이런 바보 같은!

02
요즘 초등학교 4, 5, 6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권-감수성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프로젝트는 지난 5월인가, 암튼 여러 달 전에 시작했지. 원래는 6월에 끝나는 걸로 알고 시작했어. (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간에 참여했어.) 근데 여차하니 시범교육을 하기 직전에야 끝나네. 애초 계획에 따르면 시범교육은 7월이나 8월에 시작할 예정이었고. 생각보다 준비 과정에서 할 얘기가 많았고, 준비는 너무 어려웠고. 일정은 계속 늦추어지고. 결국 이번 주 화요일부터 어느 공부방에서 시범교육을 시작했어. 총 10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난 그 중 3시간을 담당했지.

오, 이런. 난 초등학생을 너무 과소평가했거나 과대평가했어. 모든 걸 과소평가하는 동시에 과대평가했어. 나의 환상에선 다들 강사가 얘기할 땐 그래도 집중할 줄 알았어(뒤늦게 이런 환상이 있음을 깨달았지). 그리고 질문에 대체로 적절한 답을 할 줄 알았어. 착각했지, 뭐야. 이건 뭐, 탁상행정으로 정책을 펴는 것과 같은 감각이지. 그리고 초등학생이 어느 정도 인권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지 감을 못 잡았어. 근데, 6학년을 기준으로 하면 어지간한 내용은 한 번 이상은 들어 봤다는 거지. 그리고 강사가 원하는 대답이 뭔지 너무 잘 안다는 거야. 4학년도 별로 다르진 않았어. 어떤 이는 너무도 영민하게 답했어. 맞아. 예전에 쓴 적 있는데, 초등학생은 내게 미지의 세계였어. 그래서 난 학년 별로 다르다는 걸 전혀 예상 못 했지. 마치 타자를 동일한 집단으로 대하는 것처럼. 트랜스젠더라면 단 하나의,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이익과 의견으로 환원하려는 이들의 태도처럼.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복잡한 욕망을 얘기하면 “그래서 너희들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라고 반응하는 이의 자세처럼.

물론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왕따 동영상을 보고 난 뒤, “재밌어요. 기분 좋아요.”와 같은 대답이었지. 정말 재밌거나 기분이 좋다는 의미가 아냐. 그렇게 대답한 자신이 왕따 가해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강사가 원하는 대답을 간파하곤 의도적으로 이런 답을 하는 거지. 혹은 장난치거나 놀리려는 의도로 이런 말을 하기도 해. 순발력 없는 나는 이런 순간마다 당황해. 하지만 거의 모든 순간, 상황이나 맥락과 상관없는(←”상관없음”은 나의 판단일 뿐) 얘길 하는데, 오 이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강의가 길어지면 다를 너무 지루해서 딴 일을 하기 시작해. 친한 친구들끼리 떠들거나 소리 지르거나 놀거나. 나 혼자 허공에다 떠드는 셈이야. 나는 얼마나 권력과 통제에 익숙한 몸인가. 강사-수강생이란 위치가 지니는 의미를 공유하지 않는 집단에서 너무 당황하는 나. 내 몸은 권력에 얼마나 익숙한가. 이 상황에서, 그들의 관계 방식에 녹아들지 못 하곤, 뻣뻣한 상태였지. 무려 세 번이나 진행했지만 난 내 몸에 익은 습관을 유지했어. 하긴, 사흘 만에 바꾼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너무 경직된 건 아닐는지.

그러다가도 이 수업과 가장 잘 어울릴 법한 대답을 곧장 하면 또 한 번 당황해. 나는 대답을 강요하는 걸까, 혹은 감수성을 기르는 프로그램인데 주입식 교육으로 바뀌고 있는 건가, 싶거든. 수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답을 하면, 답을 한 이를 칭찬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솔직히 좀 참담한 기분이었어. 수업을 하는 도중에 내가 당황하니까, 이제 이들이 내가 원하는 어떤 답을 하기 시작하는 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거든. 모든 질문엔 원하는 답이 있지.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라, 대체로 이런 정도면 적당하다 싶은 범주의 답. 그런 답이 나오는 순간, 강의안에 예상한 그대로의 답이 나오는 순간, 그 강의는 실패한 거야. 내 느낌은 그래. 그냥 이건 나의 느낌이야. 난 그 시간 동안, 다른 수업처럼 주입식 교육을 했거나 정답을 유도했거나. 어차피 실체도 없고, 진실도 없어. 그저 나의 느낌을 끊임없이 분석해야 할 뿐.

03
확실히 강의나 강좌를 나가면 배우는 사람은 수강생이 아니라 강사의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야. 그럼에도 초등학생을 만난다는데 약간의 노이로제가 생겼어.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정말 긴장했어. 조금은 가기 싫었고. 초등학생 정도의 사람들만 봐도 살짝 경기 혹은 노이로제가 생길 정도랄까. 흐. -_-;; 권력과 통제에 익숙한 몸과 아직은 덜 그런 몸의 만남에서, 권력에 익숙한 몸이 보이는 두려움과 경기가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해. 자신과 달라, 낯설다고 여기는 이를 만나면 혐오와 두려움을 표하는 이들의 반응이 이런 걸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단발성 만남이라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해. 만약 내가 단지 5일간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최소한 한 학기를 만나는 관계라면 어땠을까? 어떤 이와는 좀 더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조급하고 서두르는 나를 발견했거든.

아무려나, 현재의 프로그램은 전면 수정해야 할 거 같아.

2 thoughts on “교육, 강사와 수강생, 권력

  1. 루인님 마음이 너무 이해가 잘가요. 그런 교육 프로그램을 돌릴 때는 정말 수강생 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이해에 맞춰서 강의를 실제로 해보거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이주여성 육아 강의를 한다고 어떤 분이 오셨는데, 이주여성의 경우에 기초반, 초급반, 중급반으로 한국어 수준이 나뉘는데 거의 70% 이상이 한국말 일상대화가 어려운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선생님은 그런 걸 알고는 왔지만 그래도 자기가 그 쪽 트레이닝이 없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외국인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한국어”로 그냥 약간 천천히 하는 수준으로 하시는데, 그게 참 그러면 안되거든요. 심지어 “제 말 한국어 지금 안되는 분 손들어 보세요” 이러면 이 말도 못 알아듣는 분들이 대부분인데요. 저는 한국말을 외국어로 하시는 분들과 대화하는 법부터 천천히 배우는 중이에요. 그게 의도가 좋다고, 마음이 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몸에 익고 시간이 지나고 연습해야 하는 거니까요. (참고로 저는 18세 이하 애들, 학생들을 보면 스윽 피해요) ^^

    1. 생전 처음 이런 일을 하니 정말 전문가가 따로 해야지, 아무나 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사전 준비가 좀 많이 부족했다는 반성도 있고요.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런 일을 꾸준히 하려고요. 흐. -_-;;
      전 요즘, 초등학생 정도의 사람만 보면 일단 경기를 일으켜요. 흐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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