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Run To 루인]의 포스팅 ‘원칙’이라면 최소한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다. 가능한 한 하루라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한 편씩의 글을 쓰는 것.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인데(고통의 쾌락?)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지금 루인의 위치를 읽으며 현재의 루인을 알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 이전의 루인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이다.
글을 쓰든 책을 읽든 주로 낮에 하길 선호하지만 블로그에 쓰는 글만큼은 저녁 혹은 밤에 하는 이유는 (나스타샤와 노는 시간이 주로 저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날 하루의 루인을 읽기 위해서이다. 어딘가에 제출하는 글이나 이랑에 올리기 위한 글과는 달리(이런 글들은 쓰는데 일주일가량 걸린다) 그날 몸앓았던 어떤 지점들을 정리하고 그 몸앓이들을 설명하고 그 몸앓이 이전의 루인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이곳에 쓰는 글은 그 만큼 정리되지 않은 날(raw)것이며 글을 공개한 순간 글 내용과는 다른(그 글의 내용을 비판하는) 루인이 되기도 한다.
[신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노국대장공주이다(사실, 기황후도 꽤나 매력적이다-_-;;). 징기스칸의 말을 들먹이며 사막으로 유목민으로 돌아가자는 노국대장공주의 말/몸은 아마 루인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할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유목민으로서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노국대장공주를 보고 있으면 요즘 유행처럼 말하는 “유목적 주체”나 “유목적 사유” 혹은 루인이 좋아하는 “변태하는 삶”이 떠오른다. 강박적일 정도로 변화에 집착하는 편인 루인이기에 한 자리에 정착한 후 고정된 삶, 변화하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변태에 대한 ‘오해’는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성(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발악)의 반영일 가능성이 크듯 유목민으로 돌아가자는 노국대장공주의 몸은 변태하자는 말로 들린다. 물론 사람마다 노국대장공주의 이런 몸―징기스칸의 말을 상기하며 몽고인의 ‘전통’을 되찾자는―을 다르게 해석할 것이고 과거로의 회귀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루인은 노국대장공주의 이런 몸이 과거로의 회귀라기보다는 현재의 정체하고 있는 삶, 고여서 썩고 곪아가고 있는 삶에서 벗어나 유목하는 삶, 매 순간 새로운 상황에서 변화하는 삶을 살자는 것으로 읽는다.
유목한다는 것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몇 곳의 자리를 정해놓고 움직인다고 해도 그 자리는 매 순간 변하는 공간이기에 그곳에서의 삶 역시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정착하고 사는 삶, 변화 없는 삶은 없다고 보며 그런 삶이 있다는 믿음을 일종의 환상으로 여긴다.) 앞으로의 노국대장공주가 어떤 식으로 묘사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노국대장공주가 고려에 와서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칠 수 있는 고려를 만들려는 노력은 원나라 혹은 몽고에 대한 배신이라거나 부부라는 성역할gender rule에 따라 “지아비”를 따른 것이 아니라 유목하는 삶, 변태하는 삶을 사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M_ 또한.. | 하하하.. |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신돈이란 인물 역시 매 순간 변화하며 개혁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잃을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비슷한 맥락에서 신돈의 웃음소리는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짜르트의 웃음처럼 간단하게 기존의 권력/권위를 조롱하는 웃음으로 들린다._M#]
이런 맥락에서 글쓰기는 유목하는 행위라고 본다. 몸이 글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자리를 잡)는 순간,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