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학부에서 4년 정도 배웠다. 수학이 논리학문이니, 내가 논리에 탄탄하면 좋을 텐데. 글을 쓸 때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 부분이다. 수학을 배우며 논리적인 글쓰기를 훈련하지 못 한 거. 수학의 논증 과정은, 전체적인 틀을 잡고, 세부적으로 어떤 논리를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한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전제들을 모두 증명하고, 그 세부 전제를 직조해서 하나의 증명구조를 만든다. 이는 글쓰기에 있어서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논리구조인데. 난, 안타깝게도 이런 논리구조를 훈련하지 못 했다. 매 시험마다 시험 준비에 급급해서, 구조를 몸에 익히지 못 했다. 이건 참 아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커다란 공부를 했다. 다름 아닌, 공리를 의심하란 것. 한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전제들, 한 세계가 바로 그 세계이게끔 하는 바탕들, 그래서 의심하기보다는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특정 집단의 합의를 통한 역사적인 산물임에도 당연한 것으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 이런 걸 공리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수학은 철저하게 공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두 점을 잇는 직선은 하나다”이라고 한다면, 이는 증명 가능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하자고 합의한 일종의 공리다. 이런 공리를 의심하는 순간, 이런 공리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수학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이런 공리를 받아들이는 수학과 이런 공리를 의심하는 수학으로 분파가 나뉘는 방식으로 발전하겠지.
내가 수학을 공부하며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정말 당연할까?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공리에 서있는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 내가 출발하고 있는 공리에 문제가 있다고, 그것을 전면 폐기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체계가 어떤 공리에서 출발하는지 분명하게 밝히기만 한다면. 여타의 다른 논쟁이나 언설에서 문제가 되는 건, 이런 출발점을 분명하게 밝히기보단 그 출발점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 의심할 필요가 없는 절대 진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수학 수업을 들으러 가면, 개강 첫 날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이 수업에서 다룰 논리의 역사적인 맥락과 논리의 토대이다. 이 수업은 이런 공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공리로 받아들일 것이며, 어떤 것은 정의를 통해 전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공리와 정의를 통해 명제를 증명할 것입니다….
토대를 드러내고 그것을 의심하는 건, 그 토대를 통해 이루어진 세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맥락 속에 위치 짓는 것이다.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공리를 통해 이루어진 여러 세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상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가장 힘든 건, 자신이 서 있는 토대, 공리를 의심하는 것이다. 타인의 공리를 읽고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신의 공리를 파악하고 비판하는 건, 쉽지 않다. 어렵다.
물론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나의 나태함과 나의 무지에 따른 것뿐이다. 요즘, 난 왜 이리도 태만했을까, 왜 이토록 공부를 안 했을까, 공부한다는 말만 하고 실제 한 건 아무 것도 없구나, 하는 반성을 하고 있다. 이제와 반성에만 빠져 허우적거릴 필요는 없지만, 암튼 좀 반성해야 한다.
특정 집단의 합의를 통한 역사적인 산물임에도 당연한 것으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
순간, ‘문화’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경제학’도 비슷한 공리가 존재해요.
‘통계학’도..(통계학은 수학인잖아!;)
문화 뿐 아니라,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규범이,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모두 그러할 거예요. 흐.
경제학의 공리는 엄청나지 않나요? 흐흐. 제가 듣기론 “합리적인 소비자”를 가정한다는데, 푸핫. 정말 근대에 만들어진 학문이구나, 싶었어요. 하긴. 그러고 보면, 수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져 이성과 논리를 그토록 사랑하는 거겠지만요. 흐흐.
자신의 공리를 파악하고 비판하는 건 정말 어렵겠죠. 가뜩이나 저는 논리나 수학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인간인지라;; ㅠ.ㅠ
하지만 라니님의 글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정갈한 느낌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