動(움직일 동)은 重(무거울 중)과 力(힘 력)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重은 人(사람 인)과 東(동녘 동)과 土(흙 토)로 이루어져 있다. 東이 비록 동쪽을 뜻할 때가 많지만 여기선 관통한다는 뜻이다. 重은 사람이 발로 지면을 쿵쿵, 꿰뚫을 기세로 밝고 무게를 가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重에 力을 더한 動은 원래 발로 땅을 밟는 동작을 뜻 했고, 발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동작을 뜻 했으나 나중에 전반적인 움직임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원을 따라가면 動은 한 자리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動적인 상태는 한 자리에서 꼼지락 거리는 것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 모든 움직임, 흐름은 제 자리를 유지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움직임과 정착은 동일한 의미일 수도 있다. (난, 수학에서 사용하는 벡터를 떠올렸지만, 나도 잘 모르는 벡터를 끌어들이고 싶진 않다.)
名(이름 명)은 夕(저녁 석)과 口(입 구)로 이루어진 글자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입으로 “아아아~~~” 소리를 내어 자기가 그곳에 있음을 남에게 알리는 일을 나타낸다. 밤에 자동차를 타고 꼬부랑길을 가다보면 불빛을 켰다 껐다를 반복해서 차가 있음을 알리는 것과 같고, 한 밤에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리는 것과 같다. 나의 위치는 변경 가능하단 점에서 名이 고정된 위치를 가정한다고 볼 수 없고,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마치 어렴풋이 위치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러한 방식의 신호는 대개 짐작할 수 있되 명확하게 파악할 순 없다는 점에서 名이란 한자는 그 의미에 꽤나 충실하다. 타인의 이름, 어떤 사물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마치 그 사람이나 사물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이다. 비오는 날 버스를 탔을 때의 유리창, 바깥이 흐릿하기만 한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뭔가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명사(noun, 名詞)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한다. 동사(verb, 動詞)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품사로,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한다. 영어논문을 읽다보면 어떤 개념어를 설명하고는 “○○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고 표현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정도? 영어의 어원에 따르면 이런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영어의 어원은 몰라서 생략-_-;;), 내 멋대로 해석하는 動과 名은 서로 대립하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뜻을 보완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 -_-; 흐.
(참고한 ‘왕편’은 금성판 활용옥편 1992년 판)
얼마 전에 옥편(근데 난 “왕편”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이 생겼다. 근래에 생긴 물건 중 가장 기쁜 물건이다. 3년 전 전자사전을 샀을 때 다른 건 다 참을 만 했는데 한자사전이 너무 허술해서 아쉬웠다. 물론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도 여러 모로 아쉽긴 마찬가지지만, 한자사전은 특히 심했다. 名을 찾으면 “이름 명”이란 설명만 나와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한자사전도 마찬가지여서 아쉬웠다. 動과 名으로 장난친 것처럼 난 아주아주아아아아아아주 가끔 이런 식의 장난을 좋아한다. 근데 전자사전이나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한자사전엔 상세한 설명이 없다.
어릴 때 왕편을 사용하는 법, 한자를 찾는 법을 배웠는데, 참 유용한 배움이다. (←결론이 왜 이래? 새삼스럽진 않지만-_-;; 흐흐.)
요번에 책 정리하면서 낡은 옥편을 두세권은 버렸나봐요. 왜 옛날엔 중고등학교 개근상 상품이었잖아요(우리때만 그랬나?^^) 그래도 아직 두권이나 남았는데, 가끔 찾아볼 때마다 제가 부수와 독음, 획수를 기준으로 한자를 찾아낼 줄 안다는 데 희열을 느껴요! ㅎㅎ
저두요, 저두요!!
제 주변에 옥편으로 한자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없다보니 부수와 획수로 한자를 찾을 수 있다는 데 일종의 희열을 느껴요. 히히.
그 희열이 마냥, 부러운…-_ㅠ
옥편 찾는 법 혹은 한자사전을 활용하는 법이, 필요가 없을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유용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옥편을 활용할 만한 때가 되면 한자를 찾는 법을 배울 만한 곳이 없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