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은 글 중 몇 편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재밌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 너무 어렵게 읽어서 다시 읽기 전부터 엄청 긴장한 글은 너무 쉬웠다. 예전에 너무 재밌고 쉽게 읽었다고 기억하는 글은 너무 어려웠다. 예전엔 술술 읽은 글인데도 한 문장을 읽기가 버겁다. 예전엔 모르는 건 그냥 무시했나, 싶을 정도다.
몇 달 전, 한 석 달 정도 ㅎ이론을 집중해서 읽었다(여기서 ㅎ이론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ㅠ_ㅠ). 난 ㅎ이론이 중요하며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집중해서 읽었다. (석 달 동안만 읽은 건 아니고 그 전부터 조금씩 읽었지만 꾸준히 읽지 않아서 문제였다.) 석 달 정도 읽고 나서 내린 판단. 지금 당장은 이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나중에 좀 더 차근차근 읽어야겠다는 것. 간단하게 말해서 바쁜 시간 중에서 석 달을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에 사용했다.
하지만 그 석 달 동안 ㅎ이론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을 거다. ㅎ를 읽어야 하는데, ㅎ를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 흐흐. 확실하게 미련을 버릴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 석 달은 여태껏 내가 모르던 걸 깨닫는 기회였다. 내가 좋아하는 이론가들 대부분은 ㄷ과 ㅎ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거나 ㄷ과 ㅎ을 분리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연결하고 있었다.
예전엔 무심하게 읽고 넘긴 단어들에 상당한 배경과 역사가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일테면 구성을 뜻하는 construction과 형성을 뜻하는 constitution은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아니, 잘 모르는 게 아니라 전혀 모른다. 그저 지금은 이 두 단어를 사용할 때 저자가 의도하는 배경과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정도다. 예전엔 왜 앞의 단어를 안 쓰고 뒤의 단어를 쓸까, 궁금하기만 했다. 지금은 이 두 단어의 의미가 다르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현재로선 이 정도지만, 이것만이라도 상당한 수확이다. 나의 밑천이 얼마나 빈약한지 깨닫는 것 만한 공부가 또 어딨으랴. 🙂
헛되이 보내는 시간은 없다. 그러니 잘못 들어선 길도 없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방향을 바꿔도 늦지 않다. 어쨌든 그 길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 이것마저 몰라서 미련을 가지는 것보다는, 뭉그적거리지 말고 아무거나 하다보면 뭔가 보이니까. 실수하지 않고 어떻게 배움을 얻겠어.
…이상 명상의 시간이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