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다. 11월이면 어쨌거나 초고가 나오니까 이후엔 원고를 수정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계획. 하지만 아니었다. 모든 글쓰기는 퇴고부터이듯 나의 모든 초고는 다 뜯어 고쳐야 하는 상황이라 새로 글을 쓰는 시간, 딱 그 만큼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 석사논문이란 걸 처음 쓰니 겪는 시행착오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학과에서 나오는 첫 번째 졸업논문이라 겪는 문제다. 모든 게 제도 혹은 어떤 체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들이다. 다른 과는 잘 모르겠지만, 난 논문 쓰다가 잘 모르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죄다 나의 선생님에게 물어본다. 만약 이미 경험을 한 사람이 학과 내에 있다면 달랐을까? 그랬을 거 같다. 난 자간에 글씨크기까지 선생님에게 물어본다. 흐. 하지만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이라 실수투성이다.
난 1호라는 게 그렇게 의미 있는 줄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상당히 놀랐다. 그리고 원래는 나보다 한 학기 먼저 쓸 예정인 사람이 있었기에 완전 태평이기도 했고. 아무려나 1호라서 난 부담이 없다. 적어도 내가 다니는 학과 내에선 “전에 썼던 누구보단 잘 써야지.”라는 얘길 들으며 비교 당할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나 다음에 쓰는 분들은, 나 보다 못 쓸 리가 없을 테니 부담이 없을 거고. 난 사실 석사논문을, 정희진 쌤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나 버틀러(Judith Butler)의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 정도로 써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물론 글쓰기 자체는 언제나 부담스럽지만. 그리고 다른 학교에서 나온 여성학과 논문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 없이 부끄럽다. 난 항상 나의 부족함과 무능력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학하는 경향이 있어 나의 이런 부끄러움이 새삼스럽진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끄럽다.
어쨌거나 11월은 10월보다 더 바쁠 예정이다. 하지만 블로깅은 다시 조금씩 할 거다. 난 그저, 블로깅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다른 때라면 이런 강박이 좋지만 지금은 무리.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거 같다. 그냥 틈이 생기면 하고 틈이 안 생기면 건너뛰고.
근데 바쁜 건 단지 논문 때문이 아니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해야 할 일을 인수인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딱 지금이다. ㅠ_ㅠ 내년을 계획하면 하는 게 맞는데, 지금으로선 괜히 하겠다고 말한 거 같다. 인수인계만 있는 게 아니라 준비하기에 부담스러운 행사도 있어서 더 그렇다. 좀 익숙한 일이었다면 괜찮은데 이 일 역시 아예 처음 하는 일이다. 여성학과에서 이 행사는 상당히 크고 중요한데 난 별 관심을 안 두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 낯설다. 무엇보다 나의 정치학을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이게 관건이다.
참, 11월 중순에 우에노 치즈코가 온다. 관심 있는 분은 기억하시길.
루인님 글 읽으니까 논문 예심 받을 때 떨렸던 일, 초고 왕창 뜯어고치느라 낑깅대던 일, 시퍼렇게(그나마도 지도교수님이 빨간펜으로 고쳐주시지 않은 게 다행) 적혀있던 메모들을 붙들고 머리 아파하던 일이 떠오르는 군요. 힘내세요
전 요즘 원고를 가져갈 때마다 자진해서 빨간펜을 챙겨 가요. 흐흐. 전 이제 다 뜯어 고칠 일만 남았어요. 흑흑
우에노 치즈코가 언제, 어디에 오나요?^^
http://www.kaws.or.kr 참고하세요.
이번 주 토요일에 오는데 재밌을 거 같아요. 🙂
10월보다 더 바쁜 11월이라니.. 점점 바빠지시는군요. +_+
논문이 잘 쓰려고 마음 먹으면 정말 한 학기에 쓰기엔 빠듯하겠단 생각을 했었어요. (전 막 썼으니까 한 학기에 썼지;;)
논문이랑 인수인계랑 다 잘 마무리되길 바래요~
고마워요.. ㅠ_ㅠ
시간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더 바빠지고 있어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