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엔 언제 연락을 할지 알 수 없는 애인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청소를 할 때도 청소기 소리에 전화벨을 못 들을까봐 얼른 끝내고, 잠시 외출하러 간 사이에 전화가 올까봐 재빨리 달려갔다 오고. 어떤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 에르노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집착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이유’나 ‘원인’을 기술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나는 에르노의 모습에서, 특정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분리 불안을 읽었다. 단지 떨어져 있길 싫어하고 떨어져 있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연락이 없으면, 간단한 인사라도 없으면 이미 관계가 끝난 거라고,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관계가 끝날 거라는 불안. 이런 불안을 읽었기에, 나는 에르노의 소설이 무척 좋았다. 소설 속 화자, 혹은 에르노 자신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언젠가 이곳, [Run To 루인]에도 쓴 거 같다. 초중고등학생 시절 해마다 반이 갈리면 이전 해 같은 반이었던 사람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한동안 난 이런 나의 행동이 무심함, 냉혈한 같은 성격 때문이라고 믿었다. 사람에 무관심해서 이런 거라고 스스로 납득하고 살았다. 근데 아니다. 전혀 아니라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난 반이 바뀌면 관계가 끝나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던 거 같다. 더 이상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데 굳이 인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던 거 같다. 상대방이 굳이 내게 인사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연락 없는 동안 관계가 끝난 상황, 연락 없음 자체가 이미 관계 종식으로 이해하는 상황, 상대방은 이미 끝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상황, 난 아직 안 끝났는데 상대방은 끝냈을 지도 모른다는 상황. 에르노가 그토록 불안했던 이유는(에르노만의 상상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이런 상황들 때문이 아닐는지.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건 한순간이란 것을, 가장 기쁜 순간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지금 즐겁게 인사하고 헤어졌지만 몇 시간 떨어져 있는 순간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불안했던 게 아닐까.
이런 말 하면 어떤 사람은 신기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경악하겠지만, 난 연락 없음은 곧 관계의 종식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난 친한 친구와도 몇 달 씩 연락 없이 지내곤 하는데 한동안은 이런 연락 없는 상태에 무심해서 신경을 안 쓰는 것으로 믿었다. 근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나의 맥락에서 연락 없음, 인사 없음은 곧 관계의 종식을 의미하기에 누군가 내게 연락이 없다면, 의도적으로 무심하게 지나친다면 그건 곧 관계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어제 즐겁게 지냈다고 오늘도 즐거울 거라고 믿지 않는 나는, 어제의 만남과 오늘의 만남 사이 시간동안 마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나는, 나 같은 인간이야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물론 모든 관계를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친밀한 관계일수록 불안은 강하다. 친하다고 믿는 관계일수록 불안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매일 이별하고 새롭게 만난다.
날마다 새롭고 낯설지만 낯익은 관계. 언젠가 누군가에게, 어제 만난 그 사람이 오늘도 같은 사람일 이유가 어딨냐고, 내겐 때로 완전히 낯선 사람같다고 말한 적 있다. 상대방은 기이한 소릴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날마다 이별하고 날마다 새로 만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는 단절과 이음의 연속을 반복한다. 그래서 나의 관계엔 언제나 삐걱거리는 소리, 덜거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제와 오늘의 불연속, 매끄럽지 않은 이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난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이별을 고하고 있다. 혹은 이미 이별을 고했다.
사실은 이런 이유다.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 무심하려고 애쓰는 건. 내가 “쿨”하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의 불안이 버거워서 들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저는 유독 연애에 있어서 쿨한 척하려다가 망하는;; 경향이 있어서 -_-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쿨하지 못한 인간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죠…ㅎ
전 상당히 많은 관계에서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친밀감을 형성하는 초기에 많은 불안을 느끼는데 여전히 적응이 안 되요. 흐흐
……. 하핫..
순간, 흠칫, 했어요, 저와, 비슷해서.
같은 공간 내에 있더라도,
단절된 시공간의 거리만큼
사람이 낯설게 느껴져요.
그건, 사람을 싫어해서가,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버려질 거라는, 관계가 끊길거라는,
그러한 불리불안에 의해 먼저 낯설게 인식하는 그런..
학년이 달라지거나, 학교를 진학하면, 유지하고 싶은
관계가 아닌 이상, 동창이든, 뭐든 무시하지만..
(정말..)어렸을 적, 하나 후회되는 일이 있더라구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먼저, 불리불안의 공포,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에
스스로 친구와 관계를 단절한 것..
하핫, 인간관계에서 자신만 관계를 유지한다고 믿는 건
종종 있지만, 그렇게 아프더라도,
내가 원하다면, 비겁해지지 않고 그대로 감당할 걸..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그래요. 분리 불안은, 그 불안을 견디기가 너무 버거워서 먼저 관계를 끊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그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았을 것을, 그때 왜 그리도 불안했을까, 라고 아쉬울 때가 있고요.
근데 이게 노력을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 항상 충돌해요. 그냥 조금만 견디면 될 거야, 란 내 안의 목소리와 버려질 거니 그냥 먼저 떠나, 라는 목소리 간의 충돌이요. 흐. -_-;;
저도 반이 바뀌면 당연히 인사 따윈 하지 않던 아이였답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생긴 다음부터는 바뀌었죠. 너무 좋아할 땐, 가끔 버려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으응?)
흐흐흐.
저도 가끔은 버려져도 좋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근데 버려진 것도 아니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닌 상태일 때,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일 때가 가장 불안한 거 같기도 해요. 흐.
맞아요. 버려진 것도 아니고 유지하는 것도 아닌 상태일때가 가장 힘들어요. 차라리 버려지는 편이 나은듯. ㅠ_ㅠ
그러니까요… 차라리 분명하게 버려지면, 그건 또 그거대로 편한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일 때, 그래서 혼자서 백만 가지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