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새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늘엔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나는, 수성과 오리온자리를 발견하며 괜히 좋아했다. 오리온자리는 내가 확실하게 아는 몇 안 되는 별자리였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별자리였다. 익숙할 뿐이었다. 익숙해서 반가웠다. 가을 혹은 겨울, 조금은 어둑했던 이른 아침의 하늘. 오리온자리.
나는 어떤 이유로 멀리 돌아가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학교 정문에서 정차하는 버스가 있긴 했다. 하지만 나는 몇 정거장 앞에서 내리거나 다른 버스를 탔다. 일부러 그랬다. 내가 걷고 싶은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 그 거리를 지나가고 싶어서, 그 거리를 걷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다. 어떤 기억이 있는 거리. 어떤 우연을 바랄 수 있고, 어떤 우연을 기대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하지만 우연이란 바란다고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바람을 담은 우연이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 발생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지.
그저 그 거리를 걷는 게 좋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언제 끝나는지도 알고 있었다. 어느 시기가 되면 더 이상 그 길을 걸을 수 없으리란 것을. 그러니 미래란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예측했던 시간이 어긋날 수도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좀 더 빨리 그 거리를 걸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그 거리를 걷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5층 높이의 아파트들과 문을 닫은 상가들, 길게 늘어선 아스팔트. 도시에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흔한 거리. 그 길 끝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오리온자리와 수성, 때때로 앙상한 초승달. 그리고 그 거리를 걷게 했던 어떤 이유.
이제와 돌이켜보면 이유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그저 그 거리를 걷는 게 좋았다. 나 자신이 좋아서 그랬을 뿐이었다. 현재에 충실하면 그만이란 마음은, 미래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저, 난 그저….
이제는 싱거운 웃음만이 날 뿐인 어떤 바람으로 사람도 거의 없는 길을 걸었다. 때때로 비실비실 웃었고, 때론 심각했으며, 어떤 날은 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으로 나는 그곳을 걷고 있었다.
…. 어제 밤, 玄牝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을 쳐다보다 참 오랜 만에 오리온자리를 봤다. 반가웠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다가, 나는 10년도 더 지난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시절 걷던 거리를 떠올렸다. 하 수상한 작금의 상황처럼, 10년도 더 지난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