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결혼하다] 2009.03.14.토 16:30. 아트하우스 모모. B4층 2관 E-4.
※내용을 조금 설명하겠지만, 이 영화는 스포일러가 큰 의미가 없는 듯해요. 저의 경우, 제가 극장을 찾을 영화라면 아주 짧은 한 줄 평가도 읽지 않는데, 이 영화는 줄거리를 모두 다 알아도 상관없겠다 싶더라고요.
01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과 얘기를 하던 와중이었다. 그이는 팔 힘이 셌으면 좋겠다고 했다. 카메라가 무거워 촬영을 하다보면 팔이 아파 화면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흔들리지 않는 화면. 공중파 방송이나 영화관에서 접하는 영상물들의 화면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화면이 흔들리지 않는다. 영화건 다큐멘터리건 상관없다. 화면이 흔들린다면 편집 과정에서 빼지 않은 실수거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혹은 촬영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거나. 사진의 경우, 흔들린 상태로 나오면 ‘수전증’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고. 그만큼 안정된 화면은 영상물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화면의 흔들림이 미숙함의 표현이라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처음 한두 번 흔들렸다면 미숙함이라도 백 번, 이백 번을 찍어도 흔들린다면 그때부턴 스타일이거나 의도적인 행동일 테니까.
영상은커녕 영화와 관련한 책을 단 한 권도 읽은 적 없는 내가 뜬금없이 영상 이야기로 시작하는 건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 때문이다. 영상 혹은 화면의 흔들림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이 영화의 영상은 시작할 때 잠깐, 끝날 때의 잠시를 제외하면 시종일관 흔들린다. 이 영화는 카메라를 삼각대와 같은 지지대에 올리고 찍지 않고 손에 들고 찍었다. 흔히 카메라가 주인공을 쫓아가거나 손에 들고 찍으면 다큐멘터리 촬영 기법이라고 했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접한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의 영상은, 손에 들고 찍었건, 어깨에 걸치고 찍었건 화면은 꽤나 안정적이다. 반면 [레이첼 결혼하다]의 영상은 시종일관 흔들린다. 마치 카메라를 처음 잡은 사람이 찍은 것처럼. 장면은 수시로 바뀌고, 가까이서 찍은 장면과 일정 거리를 두고 찍은 장면이 계속해서 교차한다. 시작과 끝 장면에서만 장면의 변화 없이 한 장면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역시 카메라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로 치면) 상당히 먼 거리에서 찍은 모습을 드러내는데 일순간 ‘카메라를 고정시켰구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만큼 흔들림이 적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흔들림이 적을 뿐, 영상은 미세하게 계속해서 흔들린다.
화면의 흔들림이 중요한 건, 이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약물중독인 킴(앤 해서웨이 분)이 재활원에서 퇴원한 날은 언니 레이첼이 결혼을 앞둔 날이기도 하다. 킴은 집으로 돌아가고 가족들은 반기는 것 같지만, 그들 사이엔 미묘한 금이 있다(킴을 데려가기로 한 아버지는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 다들 킴을 걱정하며 챙기지만, 문제는 챙기기만 할 뿐이다. 킴의 말을 듣기보다 킴에게 무언가만 해주려고 할 뿐이다. 가족들에게 킴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과 같아 조심스럽게 대하고 가급적 피해야 할 대상이다. 재활원에서 퇴원한 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중독자이고,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는 존재라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여긴다. 킴이 정말로 폭탄과 같은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킴을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처럼 대한다. 주변의 이런 반응은 누구라도 폭발시킨다. 킴 역시 폭발한다.
화면의 흔들림은 우선, 킴의 이러한 정서와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 가족에게도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게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없어 언제나 겉돌고 있는 삶. 하지만 화면의 흔들림은 킴의 등장이 가족들에게 야기한 불안, 킴과는 별도로 서로에게 쌓였던 감정들도 반영한다. 킴이 없으면 평화로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레이첼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들 서로에게 쏟아 붇고 싶은 말들을 품고 산다. 그저 그 말을 하지 않고 불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서, 행복을, 평화를 포장할 뿐이다. 얼마나 더 흔들리느냐, 덜 흔들리느냐의 문제다. 누군가가 없다고 불안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어떤 누군가의 삶은 흔들리고 불안정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삶은 안정적이고 흔들림이 없는 게 아니다. 모든 삶은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불안하다. 불안과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아도, 아주 작은 사건이 촉매가 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영상의 흔들림이 좀 심했달까. 아침에 먹은 밥이 문제였는지, 영화관에 가기 전에 먹은 밥이 문제였는지, 화면의 흔들림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거나, 영화 중반 즈음,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만 같았다. 영상의 흔들림으로 관객이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을 느낀 게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감독의 의도였다면, 적어도 내겐 성공했다. 덕분에 같은 극장의 다른 영화도 같이 즐길까 했는데, 결국 포기했다.
02
흔들림과 함께 내가 주목한 또 다른 부분은, 재활원에서 나온 킴이 참여하는 집단 상담 장면이었다. 다들 무언가에 중독되었고, 병원에 감금되어 치료를 받았고, 퇴원 후 집단 상담을 받는 과정에 있었다. 이미 중독에서 ‘완치’된 듯 한 이가 집단 상담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어제는 과거고 내일은 미래라고. 즉,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흔히 한 개인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단선적이라고 가정한다. 과거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다. 나의 현재는 과거라는 오랜 경험의 축적과 밀접하다. 젠더 범주로 예를 들면, ‘여자’로 태어났다면 소녀로 자라 죽을 때까지 ‘여성’으로 살아가리라 여긴다. 삶은 일관된 흐름을 지녀야 한다. 대체로 이러할 것이라 가정하지만, 모든 개인에게 이런 생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어떤 개인들은 삶을 단절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단절적 생애사.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만을 긍정하거나, 현재를 축으로 과거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 일례로 트랜스젠더들이 그러하다. 어느 트랜스젠더가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선 태어날 때부터 그이가 원하는 젠더에 맞춰 의사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법적 성별이 바뀌었고 자신의 호적상 성별변경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트랜스젠더라면 바뀐 성별에 따라 생애사를 새롭게 써야 한다. 그이가 mtf/트랜스여성이고, 주민등록번호 상의 성별 2번으로 바뀌었다면 1번으로 살았던 삶은 더 이상 발설할 수 없다. 1번으로서의 삶은 부정해야 할 과거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집단 상담을 받고 있는 이들이 그렇다. 중독 경험을 마치 부끄럽거나 밝히면 안 되는 경험이라도 되는 냥, 강사들은 중독경험자들에게 과거를 잊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할 것을 종용한다. 중독이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재활할 수 있다는 언설. 이건 사회적으로 금기시 하는 것을 경험했거나 실천한 바 있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사회는 이들에게 과거를 완전히 부정하고, 그 역사를 지우도록 하는 분절적/단절적 생애를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단선적’ 생애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 단선적 생애사를 구성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지배규범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 방식으로 삶을 설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단선적 생애사는, 비규범적 실천들, 금기시하는 실천들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규범의 얄팍한 수작일 뿐이다.
과거를 부정하고 새롭게 태어날 것을 요구하는 상담심리규범은 영상의 흔들림과 겹친다. 내면의 불안, 갈등, 끊임없이 뭉그적거리며 결단을 늦추는 삶 등은 뭔가 문제가 있거나 사회생활에 부적합하다고 가정한다. 영화의 화면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관습 속에서, 시종일관 흔들리는 화면은 흔들림 없는 삶이란 어떤 인위적인 장치를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란 걸 암시하는 듯하다.
(↑이거 왠지 꿈보다 해몽 같다. -_-;; 흐흐. 하지만 독후감이란 원래 꿈보다 해몽이지 않나?)
03
난 이 영화, 꽤나 몸에 들었다. 아니 온 몸이 흔들렸다(여러 의미로-_-;; 흐흐).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지만.
앤 해서웨이 멋지다. @_@
촬영 및 편집과 관련해서 꽤나 흥미로운 부분 중 또 다른 하나는 극중 등장하는 홈비디오 혹은 캠코더와 영화 카메라를 일치시키는 부분이다. 극중 인물이 결혼식에 참가한 이들을 찍는 캠코더와 영화의 카메라가 일치할 때마다 종종 배우가 관객을 쳐다보는 순간이 발생한다. 영화의 관습에서 배우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지 않는다고 들었기에, 배우가 정면으로 쳐다볼 때마다 재밌었다. 물론 이 영화의 기본적인 흔들림 속에서 이 정도의 연출이 없다면 말이 안 될 거 같기도 하고. 흐흐. -_-;
흠…….계속 흔들리는 화면은 멀미가…. ^^;;
그러게요. 더구나 큰 화면으로 보고 있으니, 정말 멀미가 날 것 같았어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