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life, take two.”
위의 구절은 어느 광고의 카피라고 한다. 그것도 무척 유명한!(난 얼마 전에 알았다.) 이 카피를 이해하는 핵심은 “take two”다. 음악인들이 곡을 녹음할 때면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여러 번 녹음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처음 녹음한 버전을 take one, 두 번째 녹음한 버전을 take two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표현은 ㅅㅌㅈ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 위의 광고 카피, “Your life, take two”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당신의 삶, 두 번째? 당신의 삶, 다시 시작하기? 당신의 삶, 부활? 어느 번역도 충분하지 않다. 이 모든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을, 마치 처음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리셋’으로 이해해도 괜찮을 거 같다.
그럼 이 광고 카피는 어디에서 사용했을까? 이게 중요하다. 이 카피는 체중감량수술 지면광고에 등장했다고 한다. 위(胃)의 크기를 줄이는 것과 같은 방식의 체중감량수술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잡으라며, “Your life, take two”를 사용했다고 한다. 의미를 파악한 순간, 난 곤혹스러웠다. 광고카피로서 이보다 절묘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이 무척 복잡했다. 과연 성형수술과 체중감량수술, 그리고 성전환수술을 구분하는 경계는 어디일까? 트랜스젠더들에겐 성형수술이 성전환수술의 일부란 점에서 둘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많은 경우, 비트랜스들의 성형수술이나 체중감량수술 역시 ‘여성’되기, 다시 태어남과 같은 수사를 사용하고 있다. 동일한 수식어를 사용한다고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비트랜스여성이 성형수술을 통해 ‘여성되기’를 경험하는 것과 mtf/트랜스여성이 (성형과)성전환수술을 통해 ‘여성되기’를 경험하는 것을 동일한 경험으로 수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전자는 형에서 언니로 전환하는 과정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후자는 ‘하리수’ 같아도 여전히 형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성을 바꾼다는 것에 상당히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성전환은 성형보다 좀 더 부담스럽고, 널리 시행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성형수술이나 체중감량수술이 성전환수술보다 덜 중요하거나, 덜 심각한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건 어떤 규범적인 몸/젠더 되기란 점에서 유사한 위치를 점한다. 성형수술, 체중감량수술, 성전환수술은 모두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것이 실재 존재할 수 없는 허구라는 걸 폭로한다는 점에서 각자가 그리는 지형도는 유사하다. 외과수술을 통하지 않고, 소위 ‘자연미인’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위 말하는 여성’, ‘소위 말하는 남성’이라는 식의 표현 방법, ‘소위 말하는’이란 수식어를 은폐한 ‘여성’과 ‘남성’은 모두 굉장히 협소한 범주이자 실재하기 힘든 기이한 범주다. 그런데도 이 셋은 동일하다고 말하자니, 껄끄럽다. 그래서 상당 부분 겹치고 어느 정도만 겹치지 않는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셋을 간단하게 구분하기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성형수술이나 체중감량수술은 성(섹스, 젠더)이 바뀌는 경험이 아니라고 단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도 잘 나타나듯, 성형수술과 체중감량수술 역시 젠더 경험의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 경험을 성전환수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단언할 근거는 무엇일까? ‘어쨌거나 성형수술이나 체중감량수술은 성전환수술과는 달라!’라고 말하는 건, 자칫 비트랜스의 젠더를 고정된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마치 트랜스젠더의 젠더만 특별하고 비트랜스젠더의 젠더는 단일하고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것처럼. 주민등록상의 성별을 바꾸고자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 외에, 이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Your life, take two”란 구절은 성전환수술 광고에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또 얼마나 복잡한 고민을 해야 할까? 아, 아직도 부족한 나를 책할 뿐이다. ㅠ_ㅠ
책하긴 뭘 책해요.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한나와 하리수의 변화는 서로 버금가죠. 부정할 바 없는 미모로 바뀐다는 점에서… 저는 성형수술이나 성전환수술이나 체중감량이나 기본적으로 같다고 봐요.
그쵸? 근데 그런 유사함/동일함을 말하기가 쉽지가 않아 고민이에요. 언젠간 이 ‘말하기 어려움'(의심 받을까 두려움)으로 글을 쓰고 싶고요. 흐흐.
루인 님~ 이번에 여성영화제는 안 가셨나요? ^^ 여성영화제 관련 포스팅이 최근엔 없는거 같아서~
전 일,월,화 오늘까지 삼일을 내리 가고 이제 끝났는데(저에겐ㅋㅋ)~ 특히 비혼모가 되는 감독 자신을 직접 주인공으로 한 다큐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가 특히 정말 좋았답니다^^ 유쾌하고 현명한..
여성영화제 하니깐 작년 이 기간에 제가 루인 님께 “아는 척”했던 게 생각이 나서 루인 님에게 들려봤답니다 ㅋㅋㅋ
전… 요즘 돈이 없어 여성영화제를 포기했어요… ㅠ_ㅠ
무척 아쉬워서 상영작 확인도 안 했을 정도예요… 흑흑
성전환 수술도 수많은 수술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수술하고 난 후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적응해야 하는것도 같고…이 수술이나 저 수술이나 위험하기는 매한가지고…
너무 단순화 했는지 ^^;;
사실 정말 비슷한 수술일 수도 있는데, 다른 수술,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로 가정하는 그건 무엇일까를 질문해야 하니까요. 헤헤.
몸에 세겨진 의미만 제외하면 혜진 님 말씀처럼 비슷한 거 같아요. 🙂
굉장히 공감해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들을 항상 잘 읽고 갑니다.
공감하신다니 고마워요.
언젠간 고민을 나눌 기회가 있길 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