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한 달 전인가요? H님을 만났을 때, “Six Feet Under”란 미국드라마를 추천받았어요. 가족, 섹슈얼리티와 같은 주제로 상당히 재밌다면서요. 당시 제가 사용하던 사이트에선 관련 파일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지요. 그러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사이트에 있더라고요. 오오.
“Six Feet Under”, 즉 ‘6 피트 아래’는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는 깊이 같아요. 드라마가 장의사 가족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니까요. 뭐, 이렇게 말해도 사실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 밖에 안 봤어요. 이제 막 시작한 거죠. 그런데도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첫 편에서부터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하더라고요.
주인공 중 한 명이 게이로 나와서 그런 건 아니에요.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 드라마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이 나오는 건 이제 놀랍지 않아요(라고 쓰지만 제가 미국 드라마를 접한 건 이번이 처음-_-;;).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고 일상 생활에서 혐오 폭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남편 장례식장에서 자식들에게 자신이 바람 피웠다고 고백하는 엄마의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었죠. 후후.
제가 이 드라마에 꽃히기 시작한 장면은 따로 있어요. 남편/아버지가 고통사고로 즉사하여 가족들 중 일부가 시신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죠. 아내/어머니는 남편의 시신을 확인할 엄두를 못 내고 아들이 도착하길 기다리죠. 확인할 엄두를 못 내는 이유가, 죽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서?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아니에요. 시신을 보는 순간 일거리로 대할 것 같아서라고 얘기해요. 전 이 말이 슬픔을 회피하는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고 느꼈어요. 아들이 시체를 확인하고 오자, 엄마의 질문은 시체의 훼손 정도였어요. 그리고 관 두껑을 열어 둘 수 있는 정도인지를 물었죠. (미국의 장례식은 관 뚜껑을 열어 둬서 고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걸 상기하시길.) 행여나 시체 수습을 제대로 못 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나서, 사업(장의사)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한 거였어요.
전 바로 이 장면에 단박에 반했어요. 흐흐. 전 이런 게 좋거든요.
장례식을 치룬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장례식장엔 슬픔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장례식은(비단 장례식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행사엔) 일정 하나하나에 돈이 들죠. 손님을 대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인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까지, 모두. 적어도 제가 경험한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부조에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았어요. 그 금액이 결코 적지 않으니까요. 어떤 장례식장에선 고인의 빈소를 지키는 건지 부조가 든 통을 지키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죠.
전 이 풍경이 장례풍습까지 자본주의에 찌들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데 동의하지 않아요. 마치 돈과는 무관한 척 하는 태도는 좀 웃기지 않나요? 전 그런 태도가 무척 가식적이라고 느껴요. 그래서일까요? 드라마에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편, 사업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하는 태도가 너무 좋았어요. 가장 와 닿는 장면이랄까요? 슬퍼하는 태도 역시, 남편이 죽어서 슬픈 건지, 죽은 남편이 영혼이 되어 자신이 바람 핀 걸 알게 될까봐 슬퍼하는 건지 모호하고요.
아, 물론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안 했는데, 파트너가 장례식장에 찾아 와서 당황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도 좋았어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죠. 제가 다 불안하더라고요.
암튼, 이 드라마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네요. 전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며 에피소드 하나에 20분 정도라고 예상했지요. 근데, 한 시간-_-;; 그리고 이 드라마 이미 4시즌인가 5시즌까지 나와 있다는 거. ㅠ_ㅠ 암튼 언젠간 끝내겠죠.
그건, ‘사람의 죽음’이 갖는 성격이 단순히, ‘감정 공유자의 사라짐’만을 뜻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경제적인, 정치적인(그외 여러가지)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다만, 요즘에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성격이 강화된 면이 있죠.
그럼에도 장례식에 대한, 죽음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있는 고대로 인정하기는 불편하더군요. 화장할 장소를 정하고, 뼈가루를 담을 도자기를 정하고, 그 도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를 정하는 것이 모두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때의 이질감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제 마음 속에서 ‘미래를 계산하는 사고’가 혼란스럽기까지 하더군요. 내가 슬퍼하는 이유는 죽은 이 때문인가 혹은 나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기 싫을 정도로. 하하. 제가 가식덩어리라서 그래요.
그러고보니 김어준 씨가 강의할 때 말한 것이 생각나네요. “외국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슬픕니까? 아니죠. 무관한 이의 죽음은 슬프지 않지요. 다만, ‘슬퍼해야할 것 같은 기분’만 들뿐이죠. 사회가 ‘넌 슬퍼해야 해!’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었는데, 공감하면서도 씁쓸하더군요.
어떤 죽음은 너무 슬프지만, 슬픔을 표현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어떤 다른 방식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게 갑갑하더라고요. 슬픔을 표현하고 망자를 애도하는 방식 역시 어떤 규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어떤 날은 그게 더 슬프더라고요.
정말 슬픔 조차 강요하는 거 같아요…
아직까지 저는 장례식에 단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어요.
지금껏 도망쳐왔죠. 가까운 혈연도, 스승도, 지인도.
죽음과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못 느낄것 같은 자신이 두려워서일까요…
죽음을 대면하는 공간은 참 복잡한 거 같아요. 사실 저도 별로 안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참.. 그리고 장례식장에서만 죽음을 대면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장례식장은 꺼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야~ <식스 핏 언더>. 전 1시즌까지밖에 못 봤지만 재밌었어요ㅋㅋ 전 다운받아서 보는 거에 익숙하질 않아서 끝까지 다 못 봤어요ㅠ
작년에 외할머니 들어가셨을 때 막판에 장지로 이동할 때 제가 부조함을 지키게 되었는데 막중한 책임을 떠맡았다는 생각에 숨이 막히더군요. 그리고 친척들이 제가 아닌 돈가방을 쳐다보는 그 모습 ㅋㅋ 아주 부담스러웠어요;;
오홋. 그래도 시즌1까진 봤다니 대단해요.
부조함을 지키셨다니 부담감 백배였겠어요. 그건 정말이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 같아요. 돈 계산 하는 것과 함께요.. ㅡ_ㅡ;;
길다면 빨리 넘기기 신공으로 보세욧. 휙휙휙.
오홋. 그러고 보니 2배속으로 휙휙 볼 수도 있겠네요. 흐흐흐.
하지만 새 파일을 재생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요;;;
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장의사 가족 이야기였구나..
장례식장이 일하는 곳이라는 말에 동감이에요. 특히 우리나라 장례식장;; 일하면서 슬픔을 잊기 위한 거라고도 하더라고요.
이제 한 편 봤지만, 의외로 재밌을 거 같아요. 여러 시즌을 제작했다니 아마 계속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흐흐흐.
일하면서 슬픔을 잊기 위한 곳이란 말… 그럴 듯 한데요? 다만 일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게 문제랄까요… -_-;;
이거랑 소프라노스랑 (하나는 장의사 가족 하나는 마피아 가족 얘긴데 둘 다 죽음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인식해서 그런지 자꾸 둘이 헷갈리더라고요, 전;;ㅋ) 보고 싶은데, 전 한 번 시작하면 하룻밤에 시즌 하나씩 끝내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자제하고 있어요. 루인님을 통해 대리만족이나마; ㅎ
오홋. 소프라노스는 마피아 가족이라니 그것도 재밌겠어요. 문제는 지금 것도 언제 다 볼지 알 수가 없다는 거죠… 흐흐.
쌘 님께서 본다면 5일이면 끝내실 거 같은데 먼저 보고 감상문 써주세요!!!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