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라메종의 소설 『저주 받은 왕 – 오이디푸스 렉스의 재구성』은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를 말 그대로 재구성했다. 이야기는 그대로 두고 형식을 추리소설로 바꾸는 식으로. 라메종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추리소설의 효시는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en Poe)가 아니라 소포클레스 같다. 범인과 탐정이 동일한 추리.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떠올리면 쉬울 거 같다. 라메종의 소설은 분명 신선하지만 내용은 그대로여서, 냉정하게 말해서 원작이 낫다.
반면 1971년 출간한 이디스 에밀톤의 『그리이스 로마 신화 편역』에 실린 『오이디푸스 외전』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전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상당히 많은 희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몇 편 안 된다. 에밀톤에 따르면 『외전』은 1963년 이집트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그가 글을 쓸 당시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발견 당시엔 상당히 떠들썩 했지만 이후 잠잠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소포클레스 작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필사본이라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내용이 기존 『오이디푸스』 뿐만 아니라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들과 너무도 달랐다. 소수의 학자들이 진위 여부를 검토하며, 관련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에밀톤은 『외전』이 진본이라고 확신하는데, 소포클레스의 희곡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외전』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특징의 반복만으로 진본이라고 확신하는 건 논리의 근거로서 약하다. 하지만 그 특징을 처음 발견한 것이 1901년이라고 알려져 있고, 너무도 강력한 특징이라 적잖은 학자들이 수긍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외전』의 공개를 학자들이 꺼린 건 어차피 공개되어도 사람들은 기존의 『오이디푸스』만을 기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창조한 인물의 성(빅터 프랑켄슈타인)인데도 영화의 영향으로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대명사가 된 것과 같은 이치랄까.
암튼 1963년에 발견한 『외전』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테가 신탁을 들은 후 서로 다른 고민을 하는 장면을 기술한다.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현명하고 통치를 잘 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라이오스가 테바이로 돌아오기 전 헤라의 저주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신탁은 불길했다. 신탁은 주지하다시피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라이오스가 이 신탁에 두려움을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명한 동시에 교활한 왕은 신탁이 자신에게 유리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신탁이 실현되기까지는 적어도 20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데, 그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자신의 아들 손에 죽지 않더라도 자연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니, 아들이 자신을 죽일 정도로 장성하기 전에 다른 원인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게 당시 그리스의 상황이었다. 만약 현명함으로 통치를 무난히 하고 자연사한다면, 성군으로 기록되겠지만 자신을 기억하는 건 기껏해야 100년이다. 더구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아테네나 스파르타의 왕이 아닌 이상, 테바이와 자신이 기억될 리 없었다. 반면, 자신의 아들이 자기를 죽이며 신탁의 비극이 실현된다면, 그는 신화로 영생하리란 걸, 후대의 기억 속에 영생하리란 걸 간파했다.
라이오스는 도박을 건 셈이다. 그는 일부로 아이를 좋아하는 양치기를 선택했다. 자신의 명령이 아무리 중해도 아이만은 결코 죽이지 않을 양치기로. 그 양치기는 아이를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넘겨 주고선 라이오스에게 아이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이 말이 거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아이를 죽였다는 양치기의 보고에 지은 미소는 안도의 미소이자 회심의 미소였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와는 다른 고민을 했다. 10대 초반에 결혼한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와 테바이의 가족제도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영원히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이 늘 불만이었다. 그는 학문을 배우고 한 나라를 통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민은 성인 남성만을 의미하는 그리스와 테바이에서 여성이 한 도시국가를 통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라이오스가 싫었지만, 그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건, 왕과 결혼하여 왕비가 된다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았다. 라이오스는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정확할 때에도 라이오스는 제 주장만 고집하며 이오카스테의 의견을 무시했다. 이오카스테는 계속해서 통치와 정치에서 밀려났다. 이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질 무렵, 아이가 태어났고 신탁을 들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라이오스를 죽이고 자신과 결혼한다고? 이건 일종의 기회였다.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였고,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들과의 결혼은 가급적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혼한다고 해서 대수겠는가. 그리스, 테바이의 관습이 자신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제도와 근친상간금기가 그토록 강력한 관습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금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고민 속에서, 가끔은 아들과 결혼하는 게 대수겠는가 싶기도 했다. 라이오스와도 결혼했는데!
『외전』은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처음부터 오이디푸스를 알아 봤다고 한다. 라이오스의 경우, 갈림길에서 오이디푸스와 대면했을 때, 발목을 보고 단번에 눈치챘다. 그는 일부러 오이디푸스를 도발했고, 죽어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 미소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에 대한 미소이자,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헤라를 향한 미소였다. 헤라의 저주가 결국 자신을 영생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오카스테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오이디푸스』엔 이오카스테가 사건의 전말을 깨달은 후 목을 매어 죽었다고 적었지만, 이는 비극을 위한 장치라고 에밀톤은 분석한다. 이오카스테가 목을 매단 것을 가까이서 확인한 유일한 사람은 오이디푸스 뿐이다. 『외전』에 따르면 목을 매단 사람은 이오카스테가 아니라 대리인이라고 한다. 대리인이 사람인지 인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오카스테는 10년 간의 치적을 뒤로 하고 테바이를 떠나 은신했다고 한다.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가 결혼한 후 10년 간 테바이는 상당히 번성했다. 그럼에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전염병이 돌고 기근이 발생한 건 어째서 일까? 이와 관련해서 에밀톤은 『외전』에 근거해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전염병이나 기근은 없었다.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통치자의 훌륭한 정치행위가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이오카스테에게서 나왔다는 걸 시민들이 깨달았을 뿐이다. 여성의 통치와 정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테바이 시민들은 분개했고, 이때부터 갖은 소문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갑자기 피를 흘리며 죽는다, 비가 안 온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 …. 에밀톤의 지적을 받아 들인다면, 비극은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점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협소한 시민 개념이다. 오직 성인 남성만이 통치할 수 있고, 정치 논쟁을 할 수 있다고 인식하며 훌륭한 통치자를 모함으로 몰아낸 것이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혹은 ‘진정한’) 비극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 완전 싫어하는데 외전은 재밌어요!
(실은 아래 포스팅에 덧글을 달려고 했는데 못 달게 되어 있었음!!!!!!! 크허!)
크크, 근데 이것도 픽션인 거죠, 루인?
후후후… 알림글을 참고해 주세요… 흐흐 ;;
참, 그리고 디디에 라메종의 소설은 실제하는 거예요. 흐흐. 라메종의 소설을 두어 쪽 읽다가 갑자기 ‘외전’의 내용으로 재해석할 수 없을까 싶어 에밀톤이란 가상 작가를 만들었지요. 흐흐.
아래 포스팅에 댓글이 닫혀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ㅠ_ㅠ 풀어 놨으니 댓글 달아 줘요… ㅠㅠㅠ
사실 첨에 픽션인 줄 몰랐어요. 루인에게 당한 건가요! 아흑- 디디에 라메종을 검색해봤죠. 그랬더니 있더라고요. 에밀톤은 없고. 그래서 알았죠. 멋지게 속았군요-ㅅ-;;
앗. 전 처음부터 눈치 챈 줄 알았어요… ;;;
에밀톤이란 이름은 교보에서 “그리스 신화”로 검색해선 가장 오래된 책의 저자 이름을 살짝 바꾼 거예요. 첨엔 그 이름 그대로 할까 하다가 찔려서 슬쩍 바꿨어요… 흐흐흐.
근데 제 블로그는 갈 수록 양치기 불로그가 되는 느낌이에요.. 으하하.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