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 정전

번개가 우르르쾅쾅. 뒤늦게 등 뒤가 환했다는 걸 깨달았다. 밤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망설이다 카페에 갔다. 워드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들려온 천둥번개 소리. 그리고 미리 찾아왔던 푸른 빛.

다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찍 泫牝에 갈 걸 그랬다고 구시렁거렸다.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을 땐, 차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泫牝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 들어갔지만, 10분 정도의 거리가 아득한 거리같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서둘러 걸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땐 옷이며 가방이 다 젖었다.

문을 열고 泫牝에 들어섰다. 스위치를 켜는데, 아, 이런. 불이 안 켜졌다. 천둥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걸까. 이 더운 여름날 선풍기 없이 잠들어야 하는 걸까. 밖에선 간간히 푸른 빛이 번졌다. 그러고 보면 이 건물의 다른 집들도 모두 불이 꺼진 것 같다. 아닌가. 기억이 긴가민가하다. 아, 그래. 계단의 야간등은 켜진 것 같은데, 야간등은 별도의 전지를 사용하는 걸까. 옆 건물도 모두 불이 꺼진 거 같다. 이 일대가 모두 정전인 걸까. 근데 가로등엔 불이 들어왔던데. 근처 가게도 불이 환했는데. 가정집만 정전인 걸까. 옥상에서 살피니 대부분의 집이 불이 꺼졌지만 불이 켜진 집도 있다. 어떻게 된 걸까. 泫牝만 문제인 걸까. 천둥번개가 泫牝만 정전사태로 만든 걸까. 泫牝의 전기배선이 고장난 걸까. 며칠 동안 계속 전기가 안 들어오면 만나기 싫은 주인집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주인과 마주치는 건 정말 싫은데,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일단 하루는 그냥 지내기로 했다. 만약 번개로 이 일대가 정전이라면 수요일에도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으니 목요일 즈음에나 복구가 가능하겠지. 그렇담 내일도 어둠 속에서 선풍기 없이 잠들어야 하는 걸까. 소리 없는 번개가 참 많이 친다. 심심찮게 푸른 빛이 泫牝을 비춘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씻고 라디오를 듣다가 잠들었다. 자면서도 걱정했다. 이러다 복구가 안 되면 이 여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걸까. 걱정을 껴안고 잠으로 빠져들었다. 가끔씩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내리니 덥지는 않아 다행이야. 잠결에 몇 번 중얼거린 것 같기도 하다.

늦잠을 잤다. 라디오 알람을 들으며 깨어났다가 다시 잠든 기억이 난다. 벌써 7시가 넘었다. 이런, 이런. 서둘러 씻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 두꺼비 집을 찾았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방 안에 있다. 이제 5년 째 살고 있는데, 두꺼비 집을 찾은 건 처음이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에도 두꺼비 집을 찾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두꺼비 집의 위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같기도 하다. 기억이 헝클어진다.

두꺼비 집 뚜껑을 여니 차단상태다. 어제 천둥번개로 스위치가 자동으로 바뀌었나 보다. 조금 허탈했다. 갖은 걱정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다니. 불이 들어오고 선풍기도 잘 돌아간다. 잠을 설치게 했던 고민을 간단하게 혹은 허탈하게 해결하고 나선 泫牝을 나설 준비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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