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의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박미선, 주해연 옮김)을 읽었다. 위 인용구는 그 책의 일부다. 이 구절을 읽으며 꽤나 속이 후련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건 아니겠지만, 신경쓰고 싶지 않음을 캐런의 친구들처럼 말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반성할 부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가 직접 언급하지 않는 이슈에선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제목에 “흑인”과 “페미니즘”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얼핏 이 책이 흑인여성만의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즘 중 흑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내용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내가 읽은 이 책은 내가 꽤나 싫어하는 말로 “소수자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 ‘다른’ 정치를 모색하는 이들 모두에게 흥미로운 상상력을 제공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트랜스젠더 정치학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 다른 매력적인 구절을 꼽자면
02
-이종태. “신자유주의 혁명가 김대중의 성공 그리고 한계” 『시사인』 2009년 8/29. 제102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기사는 회고했고, 어떤 기사는 아쉬움을 달랬다. 어떤 기사는 추모와 긍정적인 평가를 앞세웠다. 어떤 기사는 비난했다. 그리고 많은 기사들이 공과를 나열하는데 그쳤다. 이런 부분은 잘했지만 저런 부분은 아쉽다는 식이었다. 일간지야 그렇다 해도 주간지 기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위에 인용한 기사를 읽으며, 무릎을 쳤다. “그래, 주간지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DJ의 경제기사, 경제정책과 관련 있는 기사를 읽은 이들이라면 알고 있으리라. 1970년대부터 대통령 당선 전까지의 경제철학과 대통령 당선 이후의 경제철학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식의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대통령 당선 전과 후의 경제정책이 모순이라고 언급하는데 그친다. 하지만 이종태 기자의 기사는 대통령 당선 전의 경제철학/정책과 당선 후의 경제정책을 모순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두 정책이 어디서 만나는지를 분명하게 지적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의 인식이 신자유주의와 별다른 갈등없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위와 같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위의 기사는 1980년대 운동권 사람들의 주장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어쩌면 그 시절 운동을 했던 이들이야 말로 신자유주의자들은 아니었을까? 민주화 운동 혹은 운동권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고, 맥락적으로 쓰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주간지에서 기대하는 기사가 아닐는지. 여기서 좀 더 세밀하게 파고들면 그건 계간지에 실릴 글이고. 서거 이후 등장한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인 기사다.
03
책방에서 엄청난 자료를 찾았다!! 나중에 천천히 자랑해야지. 우헤헤.
첫 문단은 공감이 백배.
다른 사람이 저에게,
제가 다른 사람에게
각각 있었던 듯….
그쵸? 정말 이런 태도는 타인이 내게 가하는 것엔 민감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가하는 것에 민감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같아요…
우하하;; 첫번째 예문은 제가봐도 거시기한 느낌이네요ㅋㅋ
한번도 흑인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니…명백한 거짓말일 뿐더러 친구의 자존심을 긁는 말인데;;
사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야 말로 너무 신경 쓰고 있단 의미잖아요… 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