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John Lennon의 “Oh My Love”를 듣는다. 무한반복해서 듣는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꺽꺽, 거리며 대성통곡하고 싶다. 소리 내어 울고 싶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가뭄이다. 내 눈은 언제나 가뭄이다. 대성통곡하고 싶은 몸과 가뭄인 몸. 이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울 수도 울지 않을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안녕할 수도 없다.
나도 한때 연애를 하고 싶었을까? 다행이다. 나는 주제파악이 빨랐다. 내게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게 가능하지 않은 일, 내게 불가능하진 않은 일, 내가 욕망해도 되는 일, ‘재능’이란 것과 무관하게 욕망하는 일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선 안 되는 일들은 서둘러 외면했다. 바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면, 그냥 서둘러 포기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은 일이야 말로 내게 가장 기이한 일이다. 내가 포기해야 하는 일은 글쓰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쓰기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이미 재능과 무관한 나의 열망이었다. 어쨌든 숨 쉬고 싶(었)다.
아침부터 John Lennon의 “Oh My Love”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나는 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토록 울고 싶은 걸까. 내가 외면한 바람은 나를 어떤 몸으로 만든 걸까. 바람조차 조문 오지 않는 이 아침. 나는 내가 포기했다고 믿는 어떤 욕망을 애도하려고 애쓰는 걸까? 애도와 우울 사이에서 그냥 모든 걸 포기한 걸까? 체념을 희망하는 걸까?
지문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는 이 아침.
다른 건 몰라도… 매력이 없다는 것과 연애를 하고 싶은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모든 연애는 매력이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 이런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 그나저나 저도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이 노래. ^^
당연히(?) 아무 상관 없어요… 흐흐. 뭐랄까, 일종의 변명이랄까, 자기합리화랄까, 뭐 그런 거예요. ;; 사실 그런 표현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 다른데요…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늘 저렇게 쓰고 있어요. 하하 ;;
그나저나 노래는 무척 좋아요. 🙂
허수경풍은 확실히 너무 슬픈걸요. 연애를 안 해도 상관은 없지만, 루인을 좋아하거나 매력적으로 느낀 사람이 꼭 있었을(많았을?) 듯해요. 루인의 너무 빠른 ‘주제파악’ 때문에 길이 막힌 건 아닐까;;;
전 욕망이 많은 것 같지 않아요. 이른바 물욕이란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대부분 욕망은 물욕으로 귀결되는 듯-_- 하지만 내게 어떤 욕망이 있다면, 그게 어떤 욕망이든, 체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욕망이 좌절되는 것보다 체념하는 게 더 슬픈걸요. 루인의 표현을 빌리면 주제파악이 안 된다고나 할까요-_-
허수경의 시는 정말 너무 슬퍼서 때론 읽기가 무서울 때도 있어요.
전 책과 CD를 향한 욕망은 체념을 하지 않는 편인데, 그 외의 욕망은 쉽게 체념하고 단념하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원래 이렇지, 뭐”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달까요… 하하. 그렇게 체념한 일은, 사실 체념이 아니라 체념하고 싶은 또 다른 욕망 혹은 희망이라, 오래된 상처처럼 몸에 남더라고요. 흐흐.
그나저나 당고의 주제파악 못 함은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
지나가는 사람입니다만..사회에 님같은 사람을 가끔씩 보는데 참 안쓰러워요~간단히 요약하자면 자신만의 세계에 너무 빠져있달까? 뭐 이런말 하는 절 부정적으로 보시는건 당연하겠지만 ~저같은 시각이 님을 바라보는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이겠죠?^^ 재밌게 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