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엔 가을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종 가던 그곳은 아직도 초록이 만발하고, 무화과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몸을 가득 채울 초록 공기를 기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얼추 10년 전 들어선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 익어가는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공기는 고약하게 달고, 가을이 오면 보상금은 익어갑니다. 누군가는 빛을 청산했고, 누군가는 집을 개조했습니다. 가을이라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사시사철 쓰레기가 익어가는 나날, 보상금이 익어가는 나날. 삶은 무료합니다. 극렬했던 매립장 건립 반대 시위는 보상금 액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다들 반대 시위는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전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 속의 고향은 박제된 형태도 없이 아득합니다. 새롭게 진행될 개발 계획에 보상금이 얼마가 나올지, 그 금액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산하기 바쁩니다. 푸른색과 퍼런색의 간극은 매우 좁습니다. 노후 보장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 지려나봅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노후 보장이 되면 다행일까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냄새만 불평할 뿐, 생활 자체는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공중목욕탕도 생겼고, 대형 마트도 생겼으니까요. 재래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아, 대형마트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닙니다. 농촌마을이라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 사람들이 없어서, 살 사람도 없어서 사라졌습니다. 5일장이란 말은 이제 기억 속 유물입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마을버스를 타고 대형마트로 갑니다. 보상금은 농사로만 살기엔 불안했던 삶에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시간, 나뭇잎들이 얼굴 표정을 바꾸는 시간, 무화과가 입술을 벌리는 시간, 그리고 보상금이 익어가는 시간. 가을 하늘은 높고, 보름달은 크고 환했습니다. 저만 혼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있습니다. 외부자라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