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 화학적 거세란 말의 심란함: 여성혐오, 트랜스혐오, 이성애주의 등이 얽힌 매우 위험한 발상
어제 이 글 초안을 쓰고, 공개를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아무래도 제가 관련 글을 너무 짧게 써서 생긴 문제 같으니까요.
전 현재 발생하는 성폭력이 관련 처벌 조항이 없다거나(없는 것도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형벌이 약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처벌을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현재의 특별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법으로도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경찰, 검찰, 재판부의 의지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죠), 사건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죠.
ㄱ. 화학적 거세니 형벌 기간 증가와 같은 법률상의 명문화가 보기엔 그럴 듯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벌의 역설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형벌이 가중할 수록 사건 ‘해결’은 더 어렵고, 때로 사건 ‘해결’이 안 되고, 사건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거죠. 물론 형벌이 무겁게 바뀌면 사람들은 일말의 경각심이라도 가지겠죠. 하지만 이 경각심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형벌이 화학적 거세와 최소 징역 20년이란 식으로 가중하면, 가해자는 악착같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갈 겁니다. 가해자의 입장에선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서 손해볼 건 없으니까요. 아울러 대법원까지 끌고 가면 “정말 가해를 안 했나 보다” 혹은 “가해자가 정말 억울한가 보다”와 같이 가해자의 편을 드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고요(실제 발생하는 경우죠). 아울러 형벌을 가중하면 판사는 현재보다 더 가해자를 봐주려고 하겠죠. 조두순 사건도 형량이 약해서라기보다는 판사가 가해자를 봐준 경우고요(이건 언제나 “정상참작”이란 탈을 쓰죠).
문제는 이렇게 사건 ‘해결’ 과정 자체가 길어질 수록 피해경험자가 겪을 고통 혹은 어려움은 더 커지고 길어진다는 거죠. 대법원까지 최소 3~4년 걸린다면, 곧 그 기간 동안 사건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죠. 과연 이럴 때에도 형벌 가중이 효과적일까요? 글쎄요. 가해자가 악착같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갈 것을 예상할 수 있을 때 피해경험자와 그 주변사람들은 쉽게 고소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형벌의 가중이 정말 피해경험자에게 이득이기만 하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겠죠. 형벌가중은 사건을 사건으로 구성할 수 없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하니까요. 때론 형벌가중이 피해경험자에게 더 불리한 여건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 젠더 권력에 대한 인식 변화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죠. 성폭력 피해경험을 여전히 매우 부정적으로 대하는 게 현재 상황이고요. 물론 이곳에 들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비난의 상당 부분은 피해경험자에게로 향합니다. 가해자를 비난하는 만큼이나 피해경험자 역시 비난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형벌 가중이 단편적이나마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판사, 검사, 경찰, 변호사, 주변 사람들이 언제나 “정상참작”을 주장할 수 있고, 이것이 먹혀드는 분위기에선 형벌 가중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거죠.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검사 박대식에게 제가 호의적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인종편견을 드러내는 태도를 취했지만 사건을 법적 해석에 따른 사건으로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태도가 지극히 당연하거나 ‘상식’일 텐데도 실제 그렇지 않으니까요.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대입하면, 다른 판사라면 인종편견에 따라 다른 정황은 검토하지 않고 피어슨을 취조하기 바빴겠죠.)
ㄴ. 형벌을 가중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사건 자체를 말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형벌을 가중하면 사람들은 성폭력이 그토록 심각한 일이라고 지각은 하겠지요. 1990년대 초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피해경험자는 심각한 피해의 무력한 피해자란 이미지로만 남겠죠. 오직 고통만을 재현하고 말해야만 하는 여타의 행위자들처럼요(예를 들면, LBGT나 퀴어, 장애인처럼 지배규범은 이들의 구체적인 일상이 아니라 언제나 고통 아니면 축제만을 들으려고 하죠). 아마도 사회 전반은 오직 고통만을 듣고 싶어 하겠죠. 혹은 고통의 극복담만 들으려 하거나요. 피해경험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듣는 게 아니라, 고통만을 들으려 하고 그 고통에 베풀 수 있는 시혜만을 듣고 싶어 할 거고요. 이 과정은 결국 피해경험자가 사건 자체를 말할 수 없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을까요? 피해경험자는 사건을 말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할 것이고, 주변사람들은 피해경험자를 낯설게 대하겠죠.
일례로, 한국에서 동성애혐오폭력, 트랜스젠더혐오폭력, 바이혐오폭력이 없어서 법적 사건이 안 되는 게 아니죠. 피해경험자들은 이것을 드러내면 더 큰 피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피해경험자들이 법적, 제도적 사건으로 구성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몇 년 전, 한 트랜스젠더가 폭력피해경험으로 경찰서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경찰서 직원들 모두가 와서 트랜스젠더라고 피해경험자를 구경했다고 합니다. 그 경찰들이 양식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전 이런 반응이 한국사회에서의 매우 평이한 반응이라고 이해합니다. “쟤가 동성애자래.” “쟤가 트랜스젠더래.”와 같은 수근거림은 특정 사건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하죠. 사건이 초점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초점이 되니까요.
더 정확하게 말해, 피해경험자들이 사건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피해경험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되죠. 일례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 하기가 어려운 건, 커밍아웃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어려운 거죠.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드러내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건이 끔찍하다고, 매우 무거운 주제라고 여겨질 수록 더 심해지죠. 그렇다고 성폭력이 가벼운 주제, 끔찍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형벌을 가중하고, 성폭력 사건을 특정 이미지로 고착할 경우, 이 사건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사건이 되고 말겠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집단적인 반응이 매우 우려스러워요. 이런 반응이 강할 수록 사건 자체가 은폐될 테니까요. 피해경험자가 은폐할 지, 가해자가 은폐할 지도 알 수없고요. 물론 바로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는 그런 분위기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지속될까요? 앞으로도 말할 수 있고, 여타의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저의 우려는 간단합니다. 형벌 가중으로만 논의를 진행하면, 그 논의가 의도했던 바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 논의의 목적인 법적 사건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지금 분위기가 이전의, 이후의 사건들을 법적 사건으로 구성할 수 있고, 그것이 피해경험자에게 이득으로만 작동한다면 반대할 이유도 우려를 표할 이유도 없습니다(물론 이건 좀 논쟁적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거죠.
…. 예. 전 이전의 관련글을 쓰기 전에 이 말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이런 우려 속에서 화학적 거세의 위험성을 지적한 거죠.
그냥 평생 전자발찌 채우고 지금보다는 철저하게 관리하는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전.
제가 몰라서 이런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학적 거세라니, 가해자가 반성은 안하고 오히려 반발심을 가질 수도 있고…약을 제대로 먹는다는 보장도 없구요.
그나저나…만물의 영장이네 뭐네 해도 결국 인간도 별 수 없네요.
진정한 평등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지.
사실 인권이고 뭐고 그냥 가해자는 평생 고립시키고 싶다는 바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게 해결책도 아니고 해결책일 수도 없기에 답답한 게 아닐까 싶어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니까요… 그래서 안타깝고 또 슬프기도 하고요.
안녕하세요 장애인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희곡극작공부를 하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찾다가 루인님 홈페이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인권단체에서 일한지는 얼마 안되었는데요 일하면서 장애인 인권문제에 대해 새록새록 눈뜨게 되고 비장애인들은 참 장애인인권문제에 대해 많은 것에 무지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루인님 글을 오늘 한 두시간여 읽다 보니 참 트랜스젠더 문제에 대해 무지했구나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극작선생님은 트랜스젠더바를 배경으로 써보라고 하셨는데 다른 글에도 언급하신 아레나 잡지글처럼 그저 호기심의 대상으로 트랜스젠더를 묘사하게 될까봐 좀더 다른 트랜스젠더 얘기를 써보고 싶은데
공부할게 너무 많아 어렵네요.
지렁이 홈페이지에 갔는데 자료를 제가 못찾는 것인지 자료가 없네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그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요? 글을 읽다보니 트랜스젠더 구금시설 얘기도 관심이 가는데 (장애인쪽은 탈시설운동이 한창이라) 워크숍이 7월엔가 있었더군요. 그 이후엔 없었던거 같고. 아 그 자료도 보고 싶은데.
메일을 쓰면 부담스러워 하실거 같아 글에 덧글로 썼더니 횡설수설한 긴 글이 더 이상하네요
암튼 제 질문및 고민은 루인님 홈페이지 외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자료나 현황을 공부하고 싶으면
어찌해야 할까요? 였습니다. 차 그리고 화학적 거세에 대한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범죄, 가난 등을 개인의 문제로만 내모는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와 반가워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자료가 없다는 점이 매우 큰 문제인데요… ㅠ_ㅠ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가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트랜스젠더바와 관련 내용은 거의 없어서요. 다만 트랜스젠더 이슈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거고요. 흐흐.
지렁이 홈피의 자료실에 트랜스젠더 관련 논의 자료들이 있긴 한데, 직접 도움이 될 법한 자료는 아닐 거예요. 학위논문을 검색하실 수 있으면(www.riss4u.net) 석사학위 논문 중에서 트랜스젠더와 인터뷰를 하고 쓴 논문이 몇 편 있어요. 그 논문들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요. 국내에서 트랜스젠더바와 관련해서 권할 만한 글을 저도 아직 못 찾은 상황이고요.
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버디”라는 잡지에 관련 내용이 조금씩 있긴 해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 문의하면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큰 기대는 마시고요;;;
사실 이태원 트랜스젠더바에 직접 방문하시면 좋을 거란 말을 하고 싶지만 이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고요. 대부분이 계단만 있는 건물이거니와 술값 자체도 상당히 비싸고요. ㅠ_ㅠ
암튼 나중에 더 떠오르면 덧붙일 게요. 흐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하고 있고요! 🙂
앞서 쓰신 글의 덧글들을 읽다가 갑자기 저도 할 말이 많아져버렸어요. 저는 총기사건에 따른 총기규제와 화학적 거세를 비교하는 건 이상한 비교라고 생각됩니다…흑흑… 시간이 되면 블로그에 한번 쓰고 싶어지네요. 음…
음… 왠지 지구인 님 블로그에서 관련 글을 읽고 싶다고 조르고 싶지만, 너무 바쁘셔서 그럴 수가 없어 안타까워요. 흑. 하고 싶은 말은 쏟아야 하는데 바쁘니까… 흑흑.
그나저나 이번 사건을 통해 정말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여러 의미의 당혹감이 가장 크고요… 그래서 슬프기도 해요.
저도 잘 모르지만.. 피고인이 계속 상소하는 건, 더 적은 형량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보이기 때문인 거자너요. 성폭력 같은 경우 판사의 관점에 따라 형량의 차가 많이 나는 편이라, 그런 기대가 되는 거지.. 유사한 다른 판결들과 견주지 않고, 그냥 형량이 많다고 여겨지니까 줄여보자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니까 상소의 이유들은 “유사판결에 비해” 형량이 많음일 거 같아요. 그렇다면 법에서 정하고 있는 형량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상소가 증가할 거 같지는 않고, 상소 여부는 법원 판단의 일관성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지.. 조씨 사건의 경우도 유사한 다른 판결들에 비할 때에는 적은 형량이 아니기 때문에, 검사가 상소를 안 한걸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성폭력의 경우 형량이 적은 이유는 친고죄라서 피해자와 협의가 잘 되면 형사처벌을 안 받을 수도 있기에, 그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높은 형량을 못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물론 조씨 사건은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상해가 있었기 때문에 친고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순하게 성폭력+상해죄로 구성하면, 법원에서는 징역12년+알파가 부족하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음..제가 엉뚱한 소리한 건 아닌지..루인의 두번째 지적도 의미 있지만, 사건 자체를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게,.형벌가중 자체가 원인이라기 보다는.. 피해자를 피해자화하는(?) 다른 배경들이 더 강력할 거 같은데..그래도 루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여요.^^
전 조씨 사건이 여러모로 끔찍했지만, 사회 전체가 형사처벌 가중+ 알파를 외치는 것도 끔찍했어요. 그 맥락이 뭘까.. 그냥 저도 형벌 가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관심있게 읽다가 언제나처럼 그냥 지나가려다..아래 글에서 “두근거림이 구원할 거란 말”이 참 좋아서..글을 남기는 거예요. 갑자기 쌩뚱맞게 글을 남기기도 어색해서.. 길게 그적여봤는데 더 어색해졌네요.-_-;
저..누군지 모르죠?ㅋㅋ 2007년 봄에 법과사회이론학회 대학원생모임에서, 루인 글 좋다고, 먼저 아는 척했던 아이인데.. 그 담엔 여이연 10주년 행사에서 본 게 마지막..참참 오랜만이네요. 제가 헤매다가, 정신 없이 살다가 ㅠㅠ 여기 오랜만에 왔어요. 얼마 전까지 여기 안 열리던데, 다시 열려 기뻐요. ^^
앞으로 종종 와도 되죠? 으흐흐.. 두서 없이 적어 미안해요..
아. 루인의 논문 기대했는데,,발표나 아님 모를 통해서든 언젠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와! 반가워요!! 헤헤. 정말 오랜 만이에요. 🙂
저도 형벌가중 자체가 말할 수 없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에 공감해요. 다만 형벌가중이 더 말할 수 없게 하는 효과를 유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암튼 법, 형벌과 같은 주제와 맞물려 너무 괴롭고 복잡한 나날이에요. ㅠ_ㅠ
논문은… 논문은… ㅠ_ㅠ
사실 지난 5월에 여이연에서 발표자리를 가졌어요. 다행히 담당자 분께서 홍보를 적게 해주셔서 적은 인원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요. 흐흐흐.
논문제본 자체는 이제 거의 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뭔가 다른 기회가 내년 즈음 생기지 않을까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