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당고님 블로그에서 읽은 서평에 끌려, 보우먼의 『럼두들 등반기』(김훈 옮김. 서울: 마운틴북스, 2007)를 읽었다. 눈치 없는 산악대장, 길치인 길안내인, 과학실험에만 관심 있는 과학자, 사실상 혼자만 아픈 의사와 같은 이들이 등장인물. 에베레스트를 능가하는 높이의 산, 럼두들에 오르려는 이들의 등반 과정이 내용인데 ….
나는 오전에 일어난 사건 덕에 그 해답을 얻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특권을 차지할 만한 사람으로는 셧만 한 사람이 없었다. 셧이 그 영애를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려 최선을 다한 모습은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을 포기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곧 그를 로프로 붙잡아 맸다.(66)
이런 식의 유머가 이 책엔 가득하다.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무려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민망할 지경이었다. 위에건 그나마 전후 맥락 없이도 웃겨서 인용했지만, 앞뒤 맥락 속에서 웃긴 내용이 너무 많다. 이들은 결국 등반에 성공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두 가지. 하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을 피하다 보니 어쩌다가! 다른 하나는 다재다능하고 힘 좋은 포터들이 들고 올라가서. -_-;; 흐흐. 즐거운 오전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원래 읽어야 하는 책은 외면했다. *먼산*
난 이 책이 출판사의 소개처럼 “코믹산악소설”로도 충분히 즐거운 소설이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블랙코미디로도 더없이 좋은 소설로 읽었다. 눈치 없는 대장은 대원들의 싸움을 격렬한 언쟁과 대화로 이해하며 좋은 징조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럼두들이 위치한 동양의 요기스탄이란 나라, 현지에서 채용한 포터들을 미개한 존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산소호흡기 사용을 포터들이 거절하자 포터들은 산소호흡기가 마법을 거는 물건으로 이해하는 듯하다고 쓴다. 이것은 정확하게 서구가 동양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포터들은 서구유럽에서 온 등반대들이 간신히 오르는 산을 산책하듯 어렵지 않게 오른다. 누군가에겐 도전의 대상이며 정복의 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 공간이다. 맥락을 탈락하면 언제나 등반 대장과 같은 식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얼마나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또 다른 의도는 제국주의나 서구의 시선에 대한 조롱이 아닐는지.
암튼 즐거운 오전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 쌓여 있는 할 일을 깨닫곤 다시 무거워진 오전이었다. ㅜ_ㅜ
전 사실 오매가 산악 등반에 관한 책을 상담소 소설모임에서 읽고 싶다고 해서 시험 삼아 한번 읽어본 건데, 험난한 산악 등반과 관련한 ‘치열함’ 따위는 절대로 나오지 않고 ㄷㄷㄷ 전 등반 대장이 대원들의 연애사에 ‘집착’하는 모습도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진짜 시답잖은 연애사에 집착하고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놀리려고 쓴 것 같은 ㅋㅋㅋ ‘연애사를 알아야 그 사람을 다 아는 거다’ 같은 논리가 저 시대에도 작용하고 있구나 ㄷㄷㄷ 이 책에서 진짜 웃긴 부분은 작품의 화자가 모든 인물 중에서 가장 맥락을 이해 못하는 인물이라는 거죠. 그래서 책 전체가 농담처럼 들리는지도. 퐁이랑 바인더랑 수화로 인생역정을 이야기하고 서로 통했다고 생각한 것도 완전 웃기고, 나중에 무전기 통신이 전부 꼬여버렸을 땐 진짜 같이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웃긴 게 너무 많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저자도 완전 특이한 사람 같아요. 토목기사로 일하며 여가시간에 이렇게 웃기는 소설을 두 권쯤 내놓고 관심에서 멀어지자 상대성이론에 관한 책을 쓰며 여생을 보냈다는 게 ㄷㄷㄷ
아, 맞아요, 맞아요. 퐁이 나오는 장면들은 매순간 압권이었고, 마지막에 무선이 꼬이는 장면은 더 읽기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어요(도서관이었으니까요..ㅠ_ㅠ).. 흐흐.
그나저나 작가의 경력은 정말 후덜덜 하죠. 크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