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스의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 리뷰를 쓰며 18년간 한국에서 미등록거주자로 살았지만 결국 ‘추방’된 미누 씨 이야기를 조금 썼습니다. 펜으로 쓴 초고 포함 총 5개의 교정본에선 남겼지만, 6번째 교정본에선 지웠습니다. 콜린스의 책과 매우 밀접한 이슈지만 제 글의 전체 주제와는 밀접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요.
며칠 전 콜린스 관련 글에서, 책엔 트랜스젠더란 단어가 몇 번 나오지만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분석하진 않고 그저 단어만 몇 번 나올 뿐이란 지적을 했습니다. 사실 이건 바이/양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바이/양성애의 부재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언급하면 어떤 식으로건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전 그걸 ‘나 양성애/바이 이슈에도 관심있어서 이렇게 언급한다~’란 태도로 느낍니다. 적어도 저 자신에겐 이렇게 판단합니다. 9월에 쓴 이태원 관련 글에서도 바이/양성애를 언급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내용은 트랜스젠더 범주로 분류할 수도 있는 이들에 관한 것인데 딱 한 곳에서 양성애/바이를 잠깐(한 줄 분량으로) 언급한다는 건, 마치 ‘나 바이도 언급했다~’란 쇼 같았죠. 제대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분석범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어설프게 언급하는 건 “언급하지 않았으니 은폐했다”는 식의 비난을 피하려는 과잉방어일 뿐이니까요. 단 한 번 언급하여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어설픔이죠. 그리고 지금은, 한두 번 어설프게 언급하는 게 더 문제란 걸 배웠으니까요. 어설프게 한두 번 언급하는 건 말 그대로 타인을 자신의 지식 자랑, 정치적 올바름 자랑을 위한 악세사리로 동원하는 짓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미누 씨 이슈를 지웠습니다.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현재 한국사회의 이슈에서 콜린스의 책과 미누 씨 이슈는 상당히 시의적절하게 연결되니까요. 그리고 제 글을 읽는 이들은 누구나 미누 씨를 기대하거나 떠올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저 서너 줄 정도, 전체에선 서너 번 정도 언급할 바엔 언급하지 않는 게 낫죠. 이런 언급은 ‘타자’를 ‘타자’로 확증하는 일이니까요.
아, 리뷰에 미누 씨 이야기를 뺏다는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 이와 관련한 글을 쓰려고 계획했지만 항상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오늘 다시 떠올라 쓰는 겁니다. 굳이 이번 리뷰가 아니어도, 미누 씨가 아니어도 이와 관련해서 쓸까 하다가 쓰지 않은 이슈는 상당하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렇게 지우는 행위의 정치학을 배우면서 동시에 글쓰기 방법도 배우네요.
리뷰는 어디에 실리는 거예요? 교정을 6번이나 본 거? 역시 루인은 철두철미;
‘정치적으로 올바른’의 잘못된 활용이 진짜 여러 사람 망친다 싶어요. 저도 그런 강박 때문에 쓸데없는 말을 붙이고, 심지어는 별로 관심 없는 사안에도 관심있는 것처럼 얘기할 때가 있는데, 진짜 스스로도 왜 그러나 싶음-ㅅ-;
리뷰가 실리는 곳은… 아마 당고가 찾기 힘들 거 같아서 말하는 건데요(읽으면 민망하니까요.. ㅠ_ㅠ) [여/성이론]에 실려요…;; 구독하는 도서관이 거의 없다고 믿으면서 말하는 만용이에요…ㅠ
근데 출판사에 넘기기 전에, 교정 혹은 퇴고 대여섯 번(기록으로만 대여섯 번이라는;;;, 교정지를 출력해서 두어 번 퇴고를 하니까요;;)은 너무 적은 거 아닌가요? ;;;;;;;;;; 사실 이렇게 교정하고 퇴고를 해도 편집자의 수정 요청이 또 나오니까 문제랄까요… 하하. 그리고 교정을 해도 해도, 계속 할 게 생긴다는 건, 뭐랄까, 글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단적으로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흑흑. ㅠ_ㅠ 암튼 내일까지 두어 번 더 퇴고하고 보내려고요.. 흑. 그럼 편집자는 고작 이런 글을 쓰려고 이렇게 늦게 준 거냐고 화내겠죠? 으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