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고용시장에서 취직하려고 할 때 내가 쓸 수 있는 경력이 전혀 없더라고, 주류고용시장의 입장에서 나는 쓸모가 난감한 인간이더라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단박에 동의했다. 만화로 치면 하나의 칸에 나의 말과 선생님의 말이 등장하는 격이다. 그 답에 나는 안도했다. 다음 달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입장에서 안도한다니 참 웃기겠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
나란 인간에게 자격증 같은 거 전혀 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자격증이 하나 있긴 하다. 취직할 때 없다고는 써도 있다고 쓰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가장 흔하다는 운전면허증은 아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비싼 돈 들여 딸 수 있는 자격증이다. 바로 석사학위.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시간도 정말 많이 든다. 근데 가장 쓸모 없는 자격증이지 않을까 싶다. 흐흐. 내가 알바로 하고 싶은 일을 구하기에 이 자격증은 과하고, 자격증에 맞춰 일을 구하려면 아예 쓸모가 없거나 부족하다. 고용주 입장에서, 간단한 알바나 사무보조로 나와 같은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기엔 참 부담스럽다(고 한다). 자격증에 맞춰 지원하려면 고작 이걸로 지원하냔 말을 듣기 쉽다. 더구나 내가 가진 자격증의 구체적은 주제인 트랜스/젠더이론은, 부족하다고 핀잔을 주더라고 채용하려고 하는 이들 상당수가 기피할 법한 내용이다. 물론 이런 정황을 알고 딴 거지만, 현재 상황이 좀 난감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자격증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근데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요즘은 가끔,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일을 하면 어떨까 싶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다면 꽤나 끌린다. 바리스타 자격증 없이 할 수 있을지 걱정이고, 커피 매장 알바가 상당한 중노동이란 건 짐작하고 있다. 근데 왠지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 재미있을까? 재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같은 종류의 일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눈치 안 보고 어느 정도 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아울러 나의 알바 인생은, 프리터로 살고자 하는 바람은 결국 주류고용시장에서 나의 위치를 더 불안정하게 한다. 이런 불안정이 불안한 건 아니다. 정규직 같은 자리가 생긴다면 더 불안할 것이다. 농담처럼 진담으로, 4대보험 적용한다면 바로 거절할 의사가 있고, 비정규직으로 뽑아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정규직 필요없으니까 그냥 비정규직으로 일하겠다는 게 나의 입장이니까(배부른 소린가?).
아무려나 이런 나의 입장과 무관하게 나의 자격증은 참 난감하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할까를 고민하며 사는 요즘, 앞으론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요즘, 이 자격증 고민을 자주 한다. 사실 내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격증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타의 다른 일들(정말 좋아하는 일들)에 큰 지장을 안 주면서 구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니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거창한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를테면 오전에 대여섯 시간, 시급 5,000원. 후후. 시급은 확실히 배부른 소리다. -_-;; 그런데 고양이와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이런 고민도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뜬금없이 실없는 소리를 보태자면, 미묘란 단어를 쓸 때마다 美猫가 떠올라 혼자 실실 웃는달까. 하하. ;;)
이를테면 그냥 지금까지 한 일(밥벌이로는 부족해도 정말 좋아하는 일)을 다 중단하고,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구한 후, 나머지 시간은 고양이와 빈둥거리며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와 같은 고민. (지금까지 같이 일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쉬울까?) 혹은 이 자격증이 없는 것처럼 경력을 적당히 위조해서 대충 아무 일자리를 구한 다음 적당히 일하고 고양이와 빈둥거리는 거다. … 결국 고양이와 빈둥거리는 걸 중심으로 생활을 짜는 건가. -_-;; 흐흐. 농담이고. 고양이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밖에서 일하는 걸 찾으려고 했는데, 고양이와 살기 시작하면서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특히 여름이 다가오면서, 화장실 처리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면서 가급적 프리랜서로 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와중에 몇몇 분들이 번역일을 추천하고 있다. 오오, 이거 꽤나 끌린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두 가지 문제만 빼면 정말 끝내주는 일이다(정신의 진을 끝내버리는 건지, 무얼 끝내는 건지는 좀 확실하지 않지만.. 크크). 번역을 하려면 해당 외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해야 하는데, 나는 외국어도 한국어도 모두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달까. 아하하. 여기에 영어를 옮긴 글을 올린 적이 있으니 쉽게 확인할 수 있을 듯. ㅠ_ㅠ
이러나저러나 나란 인간 참 무능하구나. 크크크.
+ 근데 카페는 나이제한이 심하다고.. ㅠ
루인 성격상 번역 잘할 거 같아요.
다만 꼼꼼하게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고 그럼 돈을 못 번다는;
번역은 그냥 원문에 충실하게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중간은 가는 듯. 다만 좋은 번역 같은 것은 제2의 창작 영역이기 때문에 뭐가 좋은 번역인진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요. 그건 너무 어려운;
저도 프리터가 가장 좋은데 고양이를 데려오려면 그만 빈둥거려야 할 거 같아요;
뭐랄까, 부양가족이 생겨서 일하면, 의외로 즐겁기도 해요. 딱히 나 하나 건사하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기분도 들거든요. 흐흐. 물론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쉽지만요. ㅠㅠ
번역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준비를 할까봐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