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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포럼 혹은 토론회 자리에서 꽤나 재밌는(?) 일이 있었다. 사실 그 일로 적잖은 사람이 상처 받았을 듯한데…
어떤 사람이 성적소수자의 어려움을 말했고, 그로 인해 논의가 촉발됐다. 근데 그는 성적소수자의 어려움을 논하려는 이에게 당신이 성적소수자냐고, 성적지향이 뭐냐고 대놓고 물었고, 곧 이건 아웃팅이죠,라며 냉소했다.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이었고 적잖은 사람이 그의 말에 화를 냈지만 누구도 대놓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성적소수자 이슈는 성적소수자만 말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였고, 그렇잖아도 민감하다고 불리는 이슈 중 하나인 성적소주자 이슈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토론하기 힘든 이슈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LGBT나 퀴어 등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이가 없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상당히 많았음에도 그는 마치 자신만이 성적소수자인냥 말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았고, 행사가 끝날 즈음에야 간단하게 나의 의견을 말하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서 말은 안 했지만, 난 그가 일 년 뒤에도 그렇게 말할까 궁금했다. 모두는 아니지만 적잖은 사람이 당사자주의에 경도될 때가 있으니(나 역시 그랬고),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믿고 싶다. 진화론적 변화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당사자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태도가 변할 거라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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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든 많은 고민 중엔 누군가가 당사자주의를 고집하고,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당사자이길 요구할 때, 소위 말하는 당사자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였다. 너무 강하게 당사자주의를 요구할 때, 그 당사자 범주에 속하는 이는 말하기 싫어진다. 하지만 주변에선 당사자에 해당하는 이가 말하길 기대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LGBT/퀴어 이슈가 아닌 다른 이슈에선 해당 운동에 속하는 이가 말해주길 바란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내가 말하는 게 참 부담스러웠고, 망설여졌다. 그가 요구한 당사자주의에 말리는 것만 같아서.
03
요즘 고민 중 하나는, ‘어떤 범주의 이슈는 해당 범주에 속하는 이들만 말할 수 있다면(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이슈는 트랜스젠더만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운동을 왜 할까?’다. 당사자가 말하면 비당사자는 얌전히 듣고만 있길 바란다면, 당사자의 말에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권위를 부여한다면 운동이 왜 필요할까? 이런 상태는 운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떠드는 것과 같으니까. 그냥 웹에 블로그나 트위터 계정 만들어서 혼자 열심히 떠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단상이지만.. 이번의 논란이 내게 당사자주의와 운동/활동을 다시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장애인계에서도 당사자주의에 대해 말이 참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당사자주의를 내세우며 당사자아닌 사람을 배척하는 분위기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당사자주의를 경계하고.. 루인님 말씀처럼 당사자만 얘기한다면 운동이나 연대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그외 제가 느끼는 또다른 문제로는 각 장애유형별로 또 한 유형안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랄까. 이를테면 뇌병변과 지체장애인과 시각,청각장애인과 섞이지 않는 그 무엇. 또한 언어장애가 없고 상체근육을 쓸 수 있는 장애인과 몸에 장애가 심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계급주의. 뭐 등등등..
저는….. 당사자이긴 하나..(저 경증장애인입니다) 중증장애인사이에서 경증은 장애인도 아닌 그 무엇
암튼 그렇습니다. 장애인계도..
맞아요, 맞아요. 소위 말하는 위계질서를 만드는 것도 정말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일이에요. 피해자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꼭 누가 더 힘든가로, 더 많은 차별을 경험하는가로 위계서열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걸 듣노라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근데… 비공개글인데 이름을 왜…???
제가 요즘 <뿔>을 쓰면서도 이런 고민을 해요. 당사자만이 말할 수 있는가 ㄷㄷㄷ
성소주자 집단에서도 그렇지만, 성폭력 생존자 집단에서도 당사자 논쟁은 깨기 힘든 벽. 그리고 거기서는 반드시 피해를 경주하는 현상이 일어나요.
당사자주의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해 생각할 땐 또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럼 정체성의 정치 말고 다른 정치가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정체성의 정치가 끝났다는 선언이 몇몇 이어지고 다른 얘기들이 오간 거 같긴 한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형태를 모르겠거든요.
저는 요즘 굉장히 외롭단 생각을 해요. 비혼 이성애 커플로 살아가는 것이 외롭고, 레즈비언이 아닌 게 외롭고, 결혼을 안 한 것도 외롭고….. 지금도 제 옆에 엎어져 자는 참짱이 부러울 따름-_-;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역시 마지막 문장이 핵심인가..했다죠.. 아하하;;
전 어떤 의미에서 정체성정치와 당사자주의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고민해요. 그래서 자주 붙여 쓴달까요… 특정 경험을 공유한다면 공유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운동할 수도 있는데 그 경험이 절대권을 획득할 때면 너무도 불편하달까요.. 물론 다른 운동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저라고 어떤 뚜렷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아무려나 범주/정체성이 아닌, 혹은 범주/정체성에 바탕을 둬도 그것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의 운동을 상상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에요..
당사자주의를 소수자(라는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가 주장하게 될 경우, 종국에는 ‘말하라’는 압력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죠. 그건 결국 또 다른 폭력에의 노출을 의미할테고요.
물론 제3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쿨’한 방식으로 모든 이야기를 처리해버린다면 그것 또한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국면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이야 물론 알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소수자 문제들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처참한 현실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당사자주의가 이데올로기의 문제에서도, 실천의 문제에서도 한계가 많이 보인달까요..
그래도 물론 연구자의 입장으로서는 소수자의 stand-point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긴 하겠죠.
첫 번째 댓글에서도 언급하신 것 같은데 젠더문제나 인종문제나 많은 불평등 문제가 누가 ‘더’ 고통받고 ‘덜’ 고통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고통받고 있다는 그 현실과 구조 자체가 문제인데 종종 그걸로 이상한 경쟁(?) 같은 걸 하고 있더라구요. 저도 이번에 불평등 수업 들으면서 참 답답하기도..
그만큼 현실이 처참하다는 방증이겠죠?ㅠㅠ
+)그나저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고 계시죠? ^^
억압구조가 워낙 견고하고 개개인이 일상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구조를 얘기하기엔 종종 막연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라 당사자주의를 얘기하기 쉬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당사자주의가 일단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는 하니까요. 문제는 당사자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말들이, 당사자주의의 편리함보다 얼마나 더 설득력이 있을까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당사자주의가 반복될 거 같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