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결혼을 한다고 한다. 파트너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기에 결혼 후엔 직장을 옮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한국 성별화된 제도에서 결혼이 어떤 식으로 젠더와 직업, 노동인구의 이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회사를 다녔던 ps의 파트너는 서울로 발령이 났고 그렇잖아도 서울로 직장을 구해볼까 했던 ps는 서울 소재, 대기업 몇 곳에 지원서를 넣었다고 했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가, 조심스럽게 결혼 후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갈 회사가 정해져 있느냐는 의미이다. 인테리어 기사인 ps는 실력이 상당해서 여러 회사가 언제든지 자기네로 오라고 할 정도이다. 그렇게 스카웃되어 간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처음엔 뻣뻣하게 굴다가도 일주일만 지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청할 정도라고 하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러나 몇 달 전, 지원서를 넣었지만 어렵겠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특별히 이직에 관한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되어 물었던 것이다.
대답이 아팠다.
“유학파들이 쟁쟁한데…”
“경력도 있고 실력도 있잖아”
“대기업에선 실력이 아니라 학벌으로 뽑잖아.”
이 대답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하고 말았다. 결국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 대학원은 몇 해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실력은 있지만 학벌 문제로 항상 힘들어 했었기 때문이다. (왜 인테리어 기사는 인테리어 관련 과를 나와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다 수학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국문과를 나와야만 소설을 잘 쓰는 것도 아닌데.) 또 한 번 학벌이라는 인종주의의 벽을 만난 것이다.
언젠가 정희진 선생님은 “한국은 비서울지역대학, ‘여성’, ‘장애’인이면 취업에서 아웃out”인 사회라고 말씀 하신 적이 있다. 군대를 간 ‘남성’과 군대를 면제 받을 수 있은 빽이 있는 ‘남성’ 만이 ‘정상성’을 획득할 수 있는 사회면서 동시에 지역과 학벌과 같은 집단주의가 ‘정상성’내의 위계서열을 만들어 내는 사회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기업이 아니라 또 다시 중소기업에 취직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시로 밤샘 작업을 하면서도 몇 달씩 윌급이 연체될 지도 모르고.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고(어쩌면 지금도) 앞으로도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니 어쩌면 대학원을 갈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ps가 할 수 있는 협상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가거나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가는 방법들, 이런 다양한 방법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억압 체계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행동이라고 몸앓지 않는다. 그건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한 협상력이라고 몸앓는다. 현존하는 사회제도에 대한 대응 방식은 다양하고 ps의 방법은 그런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것을 현존하는 폭력들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것으로만 읽어 내는 것은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권력자의 시선이라고 몸앓는다. 동시에 협상력을 가진 이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타자화 시키는 또 다른 폭력이며. 이러한 협상력이 기존의 제도를 흔들 수 있는 힘라고 믿는다. (꼭 ‘운동’을 해야만 그것이 ‘저항’인 것은 아니란 의미이다.)
이렇게 믿으면서도 한편으로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이런 폭력적인 제도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ps의 힘을 믿으며 옆에서 응원 하려한다.
한국에서 학벌은 국가가 주도하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를 대학에 보내기 위한 교육을 시키고, 수능이라는 하나의 길로 몰아넣고, 마치 수능점수(학벌)가 그 사람의 능력인양 알도록 하는…
정말 그래요. 미쳐 몸앓지 못한 부분인데..
쑥이 쓴 글, 보고 싶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