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며칠 전 아침, 알바하러 갈 리카가 화장실에 갔다. 그 시간 리카나 바람이 화장실에 가는 일이 드물어 조금 신기했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여는데, 리카가 후다닥 달려왔다. 평소보다 빨리 볼일을 보고 달려왔다. 난 그런 리카를 문 앞에서 한참 바라보며 인사했다. 평소 리카는 내가 외출할 때마다 날 배웅한다. 하지만 그날은 리카가 화장실에 있었기에 그 상태로 인사할 줄 알았다. 얼른 볼일을 보고 후다닥 달려올 줄 몰랐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바람도 나를 배웅한다. 최근 들어 생긴 버릇이다. 내가 외출하면 바람도 문 앞까지 와선 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가끔, 리카가 날 배웅하지 않으면 바람은 리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리카가 배웅하러 나오면 그제야 바람은 안심한다.
02
아침, 머리카락을 말릴 때면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한다. 신기하게도 리카는 내게 온 초기부터 헤어드라이어 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내가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고 있으면 발치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볼 때가 많다. 머리를 다 말리면 난 헤어드라이어로 리카의 털을 고른다(?). 첨엔 리카가 도망갈 줄 알았다.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크기도 하거니와 그 바람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리카는 헤어드라이어를 피해 도망치기보다는 가만히 있을 때가 많다. 때론 배를 드러내며 발라당 누워선 장난을 걸 때도 있다. 따뜻해서 좋은 것일까?
바람은 헤어드라이어 소리만 들리면 구석진 곳에 숨는다. 집고양이인데, 큰 소리를 무서워한다. 헤어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도 싫어서 후다닥 도망간다. 후후.
03
바람은 겁이 많아 곧잘 도망가고 구석에 숨지만, 놀자고 “야옹, 야옹” 울기도 한다. 거의 매일 운다. 울다가 안 되면 발라당 뒤집어져선 배를 드러내곤 나를 바라본다. ‘이렇게 해도 나와 안 놀거야?’란 표정이다. 난 그 배를 마구마구 쓰다듬는다. 고양이의 따뜻한 배가 좋다.
우리 엄니 댁이 단독주택이라 길고양이 세 마리가 우리집에 거주하다시피 하는데, 노순이, 흰순이, 깜순이 (우린 그냥 무조건 순이다) 중에 어떤 녀석인지, 푸지게 잔디밭에 설사를 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주는지? 먹을 걸 아예 주질 말아야하는지? 그런데 병든 듯 보이는 노순이 녀석이 고등어에 밥을 섞어주니 맛있게 먹던데, 이거 잘못한 거뇨? 참고로 우리는 생선뼈나 대가리 얻어와 고와서 밥하고 섞어주고, 요새는 동네 가게에서 고양이 사료를 사다준다.
설사는 음식이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길고양이라면 밖에서 뭔가 이상한 걸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집고양이도 사료를 바꿔주면 일시적으로 설사를 하곤 해서 며칠 지켜보곤 하거든요. 하지만 바깥을 돌아다니는 경우라면 뭔가 이상한 것을 먹어서 그럴 수도 있어서 병원에 데려가는 게 가장 확실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겠어요..
참, 제가 채식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좀 챙겨드릴까요? 채식사료가 설사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많아서요. 헤헤.
맨날 생선 대가리로 입맛 버린 애들이 채식사료를 먹겠뇨? 그래도 요샌 설사가 없어. 이 녀석들, 우리가 사료를 따로 사서 주기까지 하면 보은 차원에서 똥은 다른 집에 가서 싸야하는 거아니냐? 내가 잡초 뽑는 담당인데 이녀석들이 정원 중앙에 똥을 푸지게 싸놓는 걸 보면 아주 염치없는 녀석들임.
아, 그런데 고양이는 자신의 변은 흙으로 숨기는 습관이 있어서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똥을 싸는 건 고양이가 아니라 개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설마 떠돌이 개가 선생님 집에 들어왔을 리는 없을 테니 고양이 중 한 녀석이 그랬겠죠? 흐흐. ;;;
그래도 이제는 설사가 없다니 다행이에요.
길냥이 똥이 틀림없음. 잔디, 특히 작년에 죽은 잔디로 잔뜩 덮어놔서 모르고 곡괭이로 잡초뽑다 똥 만진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애들이 좀 염치가 없는 거 아니냐? 낮에는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도 하게 해주고, 사료도 주고, 그러면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게 있어야하잖아. 내가 너네들 너무한다… 하고 있다. 참고로 흰놈, 검은놈, 갈색놈, 세 놈이 거주하고 있다.
선생님, 오늘 정말 온랜 만에 반가웠어요!! 헤헤. 허리가 좀 괜찮으신 듯해서 다행이다 싶었고요.
그리고 고양이에게 기브 앤 테이크는 불가능한 걸요.. ㅠㅠ 그래도 속으론 선생님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거예요.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