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고 싶을 때가 있지요. 상영시간표를 확인하다 <나넬 모차르트>란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모차르트’란 제목에 낚였습니다. 소개구절을 확인하니 더 흥미롭네요. 볼프강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 모차르트를 조명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나넬 모차르트지만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 사람의 일생.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버지니아 울프였습니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그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론은 비극이죠. 재능은 있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글재주를 발휘할 수도 없어 그냥 가난하게 죽는다는 얘기(정확한 것은 아니라 살짝 긴가민가…;;; ). 나넬 모차르트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일까요? 이런 기대로 극장에 갔습니다.
극장에 가는 길, 문득 걱정이었습니다. 내가 기대한 내용이 아니면 어떡하지? 아니, 아니. 내가 기대한 내용과 다른 부분이 없으면 어떡하지? 에이, 설마. 2010년에 제작한 작품인데 설마 뻔한 내용이겠어요. 뭔가 기대하지 않은 다른 무엇인가가 있겠지.
영화가 끝났습니다. 네, 예상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했던 얘기에서 거의 안 벗어납니다. 재능이 있어서 프랑스 황태자와 대음악가가 인정할 수준이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작곡법, 글쓰는 법 등을 (제대로)못 배웁니다. 음악학교에 수업을 들으려 하지만 남장을 하지 않으면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 합니다. 아울러 자신의 재능 및 욕망과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영화 말미에선 작곡을 포기하고 결혼하고, 볼프강 사후엔 볼프강의 작품을 관리하며 살아갑니다.
뭐, 이런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겐 너무 진부하지만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대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영화 주제를 얘기하는 장면은 닭살이지만 뭐, 괜찮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다 말았는지, 편집을 하다 말았는지 내용이 계속 끊깁니다. -_-;; 예를 들어, 나넬이 병을 앓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지내죠. 의사가 왕진을 와서 검사를 한 다음 소다수와 우유를 먹이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그 다음 장면은 마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응? 의사가 왕진했으면 그 다음은 최소한 낫는 장면이라도 보여줄 법한데 그런 장면 없습니다. 왕진 후 바로 마차 여행. 그 장면부터 나넬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저는 목소리를 잃은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완치. 으잉??? 영화 전개가 이런 식입니다. 항상 뜬금없고 갑작스러워요.
재밌는 부분도 있습니다. 전 볼프강의 천재 이미지만 소비했는데요. 이 영화는 볼프강을 그냥 10대 꼬마로 묘사합니다. 물론 천재인 건 여전하지만 침대에서 방방 뛰어노는 그런 꼬맹이로 묘사하죠. 나넬의 음악 실력에 초점을 맞추는 장면도 좋습니다. 볼프강을 천재라고 얘기하지만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음악 실력은 나넬입니다. 뭐, 영화 주인공이 나넬 모차르트라 당연한 걸까요? 하지만 나넬 모차르트를 조명할 일이 없었기에 좋았습니다.
피상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는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이지만, 실질적 주제는 연대 같습니다. 나넬 모차르트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엔 어머니, 안나-마리아 모차르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나넬이 여성이란 이유로, 작곡, 글쓰기, 바이올린 연주를 모두 금지합니다(그런 시대였죠, 여성이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면 음란하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_-; ). 그런데도 나넬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순회공연에 동행합니다. 레오폴드는 이것마저 금할 수도 있었죠. 그런데도 이는 허용합니다. 간접적이지만 이 과정에 안나-마리아의 힘과 지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안나-마리아는 나넬이 음식 조리를 싫어하고 음악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음악만 하도록 지지합니다. 나넬에게 음악 재능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하고요. 안나-마리아의 지지가 없었다면 나넬의 음악 생활은 거의 불가능했죠(나넬이 혼자서 생활하며 음악으로 먹고 살려고 가출할 때도 안나-마리아가 지지하죠). 후반부에 가면 안나-마리아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뀌지만, 나넬이 음악을 하는데 안나-마리아의 지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나넬이 작곡가로 데뷔하는데 황태자의 호의가 큰 역할을 하긴 합니다. 그건 특정 계기 혹은 시기에 한정한 일일 뿐 나넬 삶에서의 단단한 토대는 아니죠. 이 여성연대가 이 영화의 실질 주제가 아닐는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레오폴드가 볼프강에게 작곡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볼프강은 열심히 듣다가 갑자기 방문을 열죠. 문 뒤엔 나넬이 작곡 수업을 훔쳐 듣고 있었습니다. 놀란 나넬은 얼른 다른 곳으로 갑니다. 전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자작곡 악보를 태우는 장면입니다. 복잡한 몸으로 이 장면을 봤습니다.
참,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보고서 ‘모차르트에게 누나가 있었어?’ 하는 생각을 했죠.
그래요, 대부분은 누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을 거예요. 그게 왠지 짠하더라고요.
이 영화의 가장 큰 공헌은 나넬 모차르트를 알렸단 점이 아닐까 싶어요… 흐흐. ;;
모짜르트라는 제목에 낚여서 볼까 말까 했었는데 결국 고민하는 사이에 개봉관이 동네에 하나도 없어져서 결국 못봤거든요. 누나 이름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냥 영상+모짜르트 음악들어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충동이 일었었는데…..이런 내용일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잘 보고갑니다
아쉬운 건 음악이 풍성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도 않아 많이 아쉬웠어요. 하프시코드 연주가 자주 나오지만, 연주 장면이 상당히 자주 나오지만 이상하게도 음악이 부족하단 느낌이랄까요.. 뭔가 좀 더 재밌게 만들 수도 있을 법한데 많이 아쉽달까요.. 제 기대가 너무 컸나 싶기도 하고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