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How Sex Changed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진작 읽어야 했는데 이제야 읽는 게으름이라니!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으잉?’이란 표정으로 절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 제목만 보고 당황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얼 상상한 것일까요? 😛
이 책은 미국 트랜스섹슈얼의 역사를 다루면서 ‘섹스’의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크리스틴 조겐슨이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 등장한 조겐슨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한국의 하리수 씨를 떠올리면 됩니다. 당시 미국에 정말 센세이션하게 등장했거든요. 존겐슨이 신문에 자서전을 연재하자 평소보다 몇 배 더 많이 판매되었죠. 엽서에 “To Christine Jorgensen”이라고만 적어도 배달이 될 정도였고요.
조겐슨이 등장한 직후, 조겐슨에 엄청난 관심과 함께 조롱과 비난도 쏟아 집니다. (물론 대세는 조겐슨을 수용합니다, 한국 사회가 하리수 씨를 수용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 비난 혹은 조롱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Christine’s sister will have a baby,” one joke opened. “Does that make [her] an aunt, an uncle or an ankle?”(77)
크리스틴의 자매가 아이를 가진다면, 크리스틴은 숙모가 될까, 삼촌이 될까, 발목이 될까?
처음 ankle을 읽었을 때 전 aunt의 a와 uncle의 nk(c)le의 합성어인 줄 착각했습니다. 이 구절을 소개하기 전엔가, 크리스틴을 여성과 남성이 공존하는 그런 존재로 얘기하는 구절이 나오거든요. 그런 맥락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단어 뜻이 발목, 복사뼈니까요. 무슨 의미인지를 잠시 고민했습니다. 저자도 이 구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거든요. 그냥 넘어갑니다. 근데 순간 퍼뜩 떠올랐습니다. 아, 발목…
‘부은 발목’을 알고 계시죠? 네, 오이디푸스가 ‘부은 발목’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ankle은 조겐슨을 오이디푸스와 같은 존재로 미국 사회에 등장했다는 것을. ankle이란 조롱은 조겐슨이 가족 질서를 흔든다는 불안을 반영합니다. 조겐슨은 누가 여성이고 누가 남성인가를 질문하는 동시에 가족 관계 자체도 흔들었습니다(아들에서 딸로).
지난 9월 2일 대법원이 미성년 자식이 있는 트랜스젠더는 법적 성별을 정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http://goo.gl/5QWWE ).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1950년대 조겐슨을 ankle로 조롱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성애 가족의 취약한 구조가 폭로되었기에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불안, 이성애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불안, 이성애 가족 구조가 결코 자연스러운 형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는 거죠. 이 불안과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법은 금지를 선언하고, 언론은 어떻게든 조롱하려고 합니다.
규범이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요? 살얼음보다 취약한 구조인 지배 규범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요?